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거듭나기 전의 제 삶은 저의 이름을 빛내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거듭나지 못한 육신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거듭남을 경험하기 전에 겉과 속이 다른 제 모습 때문에 큰 고통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돕고 대가 없는 봉사를 하고 있었지만, ‘진정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일을 통해 내가 얻고 있는 신망이나 칭찬 등이 없다면 과연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에 ‘그렇다.’라고 할 수 없었기에 내 마음속의 생각을 모르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가책과 함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지고지순한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명예라는 대가를 챙기는 교묘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하나님 앞에서 위선의 옷을 벗어 던지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는 껍데기뿐인 인생입니다.”

“저는 가짜입니다. 진짜가 되게 해 주세요.”

주님께서 제 속사람을 새롭게 하신 그날부터 제 마음속에서 새로운 소원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의 뜻과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살던 옛사람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이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새롭게 하시기 전 제겐 민주화 투사, 기독교 철학박사, 가수 등 제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인생의 많은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에는 오직 한 가지 소원만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제 인생에서 그분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며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 뜻과 저를 향한 하나님 계획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단번에 모든 계획을 다 보여주시지 않으시고 그때그때 인도하시면서 저로 하여금 늘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처음 깨닫게 하신 것은 일보다 주님과의 교제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먼저 된 형제님들을 통해 이것이 바로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며 창세 전부터 인간을 위하여 약속하신 영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거듭난 후에 주님께서 실제로 처음 제게 보이신 사역은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예전에는 200명이 넘는 교회의 청년회 교육전도사 일도 작아 보였지만, 주님께서 새롭게 주신 시각으로는 너무나 크고 귀한 주님의 일로 보였습니다. 따라서 이 일을 주께 하듯 온 힘을 다했습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일에 크고 작음이 있었지만, 이젠 어떤 일이든 주님께서 맡기신 일은 크고 귀하게 생각합니다. 주일학교 후에는 학생회를 섬길 수 있게 하셨고 그 후에는 청년들을 그리고 한 모임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게다가, 주님께서는 이 과정에서 사람이 구원받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과 주님의 일꾼은 주님께서 연단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일꾼으로 빚어져 가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게 훈련하셨습니다. 모세를 광야에서 연단하심 같이 남의 구두를 닦는 일도 하게 하셔서 제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의사와 간호사와 병원 직원들의 구두를 닦으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는데 그때마다 간절히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구두 닦기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주님의 놀라운 구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 잠깐 전도사 생활을 할 때도 복음은 전했지만, 그때는 보지 못했던 주님의 구원 역사가 구두를 닦으면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네가 아니라 나다.”라는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인쇄소와 어린이 선교회 일을 통해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제 인생을 주님께 드리도록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말씀은 잘 박힌 못처럼 지금까지 저와 우리 가족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며 성도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저는 국내 복음전도에 부르심을 받았고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니 해외선교에는 쓰임받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해외선교를 떠난다면, 그는 분명히 영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통해 오직 국내선교만을 생각하는 제 마음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바꾸셨습니다. 예루살렘과 같은 한국과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할 책임이 바로 제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섬기던 모임에 네팔 근로자들을 보내시어 네팔 땅에 복음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전하는 사람이 없어 계속 복음에서 소외된 저들에게 누가 갈 것인가?’

주님께서는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다른 나라 영혼들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계속 느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린문 선교후원회 정보지를 통해서 인도네시아의 영적일꾼 필요를 알게 하시어 제 마음을 격동시키시고, 르완다에서의 후투족과 투치족 간 종족분쟁으로 하루에 이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신문기사를 통해 주님 없이 전쟁과 질병으로 지옥에 떨어져 가는 영혼들에 대한 마음의 고통을 안겨주셨습니다.

그 후로 제 심령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해외에 있는 영혼들에 대한 고통으로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더는 우리나라 사람만을 고집하며 앉아 있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부여잡고 놓지 못하던 한국영혼들에 대한 부담도 덜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 사는 집이 아홉 채밖에 안 되는 외딴 섬인 남해안의 모도에서 전도하던 중에 ‘이제 한국에는 복음을 듣지 못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핑계할 사람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작은 섬에 하나님 말씀을 전했고 심지어 여호와의 증인들까지 다녀간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해외선교에 제 생애를 드리기로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열린문 정보지를 통해서 보여 주신 인도네시아라고 생각했는데 네팔에 뜻을 두신 주님께서는 아내를 통해서 이 일을 막으셨습니다. 기도하며 말씀을 보던 중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셀라)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시편 21장 1-3절)”라는 말씀에서 다윗의 마음에 소원을 주셨던 것처럼 그때까지의 인도하심을 통해 인도네시아보다 네팔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3절 말씀으로 이국만리 타국으로 떠나려는 제게 큰 위로와 힘을 주셨습니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이 말씀은 마치 주님께서 먼저 그곳에 가시어 저를 아름다운 복으로 영접하시고 그 후에는 제 머리에 정금 면류관을 씌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말씀에 용기를 얻어 다시 아내에게 “여보,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네팔인 것 같아.”라고 했더니 다른 설명도 듣지 않은 채 아내는 “인도네시아든 네팔이든 어디든지 가요.”라고 너무도 쉽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우리 가정을 네팔로 인도하시려는 주님의 역사였습니다. 자기는 절대로 아니라고 고집하며 기도하던 아내가 말씀을 보던 중에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할 수만 있으면 해외선교를 피하고 싶은 자기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씀에 자매도 그만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어느 개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 교회가 함께해야 하는 일이기에 교회와의 교제가 남아 있었지만, 그때 저희가 섬기던 교회 성도님들은 저희 가정이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 온 게 아니라, 언제든지 주님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순종해 가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저희 가정은 당시에 다른 지역(제천)의 모임 개척을 기도하고 있었지만, 오직 주님께서 주신 말씀만 의지하여 1997년 5월 13일 충주교회의 파송을 받아 네팔로 떠나왔습니다. 주님께서는 떠나기 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라는 말씀으로 네팔정착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모든 족속을 향해 나아가라고 명령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파송하는 분이 누구이신지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또한, 저로 하여금 네팔로 보내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저희는 오직 약속의 말씀만을 의지하며 살아왔기에 가진 것이 없었지만, 주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대로 모든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 주셨습니다.

네팔선교!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우선, 전도를 금지하는 법이 있는 나라에서 체류할 방법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학원을 통해서 비자를 해결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삼 년의 학생비자가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최근민 형제님의 도움으로 사업 비자를 받아 체류하고 있습니다. 사업비자로 체류하며 실제로는 선교사로 사는 이중생활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큰 게 아닙니다. 특히, 매번 비자를 연장할 때마다 겪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양심을 지켜야 하기에 그들의 뇌물 요구를 거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쉬운 길을 알면서도 어려운 길로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이기에 마땅히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이 또한, 힌두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여기며 기꺼이 감내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네팔 말을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나이 서른일곱에 다른 나라 말을 배우기란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는 암기에 자신 있었는데 공부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가 되고 보니 외운 걸 자꾸 잊어버려 머릿속에 남는 게 많지 않았지만, 믿음은 들음에서 나니 복음을 전하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들의 말을 배워야겠단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네팔어 어순이 우리말과 같고 그리 복잡하지 않아 1년 만에 어설프게나마 네팔말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나 성도들을 위한 말씀이나 성경공부를 하기에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한국말이 자연스럽고 편하지만, 이곳 영혼들에게는 한국말이 방언에 불과하기에 네팔말로 말씀을 준비하고 네팔말로 예배하고 네팔말로 교제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선교사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영어권 선교사들이 오랫동안 네팔에 머물고도 영어로 예배와 교제와 말씀을 전하는데 언어 때문에 선교 영역이 얼마나 제한받는지 모릅니다. 한 미국 선교사는 선교사가 선교지의 말을 배우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선교! 그것은 참으로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지상 대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주님의 이 명령을 품고 복음에 소외된 이들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증인의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증인들에게는 성령님의 권능이 왜 필요할까요? 그것은 복음전파가 법정에서 증인이 증언하는 것 같은 단순한 차원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전파는 영혼을 붙들고 있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도 주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려면 성령님과 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이 죄인들이 들어야 할 복음이라면, 성령님은 이것을 듣고 믿은 자들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증인들의 복음전파와 더불어 성령님께서 그를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는 역사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어느 날 네팔어 가정교사와 공부하던 중에 힌두교 시바 신의 생일 때만 되면 좋던 날씨도 갑자기 춥고 흐리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저는 “이번 씨빠라뜨리(시바 신의 생일)에는 날씨가 화창할 겁니다.”라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네팔어 선생님의 “왜?”라는 질문에 저는 “제가 믿는 참 신이신 하나님께 좋은 날씨를 구하는 기도를 할 거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곤 주님께 이미 벌어진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주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하시어 우리는 몇백 년 동안 해가 보이지 않던 씨빠라뜨리에 찬란하게 빛나는 해를 보았고 몸과 마음이 따뜻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네팔선교가 바로 이 네팔 땅과 영혼들을 다스리는 어두운 영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에 대해 잘 알고 능숙하게 전할 수 있어도 항상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길 기도할 뿐입니다. 기도 없이 복음만 전한다면, 그 어떤 성령의 역사도 일어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선교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기도하는 것이오, 말씀 전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학교나 병원, 보육원 등을 운영하지만, 선교는 궁극적으로 마귀에게 속한 영혼들을 건져내는 영적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을 때마다 내가 전한 복음을 제대로 깨달았는지 살펴보지만, 그보다 성령님께서 그를 진정 새롭게 하셨는지 더 살피게 됩니다. 복음은 잘 이해하고 말하면서도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께 대한 감사나 감격이 없고 주님과 성도에 대한 사랑의 변화가 없으며 모임이나 말씀을 사모하는 새로운 마음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침례는 뒤로 미루고, 먼저 참된 복음을 깨닫게 되길 주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3-4)

복음전도의 전문가인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 두려운 마음으로 떨렸던 것은 복음을 잘 못 전해 창피를 당하거나 명예가 실추될까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아닌 자기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에 의지하게 될까 봐서였습니다. 따라서 모임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복음을 전한 제 책임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잘 이해시키려 노력한 만큼 주님의 역사를 기도로 구했더라면, 그리고 간증을 들으면서 더 신중하게 주님께서 하신 일을 살폈더라면, 그들이 지금도 모임에서 주님께 예배드리고 교제하고 있을 텐데 하는 후회도 합니다.

어쨌든 선교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임을 여러 가지 실패를 통해 더욱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힘이나 능력으로는 안 되고 오직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는 일임을 기억합니다. 또한, 선교지는 주님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네팔사람들이 한국에 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37년을 살던 제가 네팔에 와서 들은 말은 “비스따러이”였습니다. 이 말은 네팔인들의 대화 속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천천히”라는 뜻입니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살던 제가 이 “천천히”에 적응하려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저에게 “천천히 가세요.”,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는 제게 “천천히 드세요.”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길이 좁고 험한지라, 운전을 천천히 해야 하는 곳이 네팔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라면 하루면 끝날 일이 1주일이나 걸리고 무슨 일이든 하루에 두 가지는 할 수 없는 나라가 네팔입니다. 언젠가 뉴질랜드 돈을 바꾸러 온종일 이 은행 저 은행을 돌아 다녔지만, 끝내 바꾸지 못해 짜증스러워했더니 허말 형제가 “형제님,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네팔입니다. 네팔에서는 무슨 일이든 하루가 걸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아! 이 나라는 나의 부족한 인내심을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학교로구나’였습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천천히”에 적응하지 못해 네팔에서는 자주 분을 내곤 하지만, 오히려 한국의 형제?자매님들께는 불편을 끼치곤 합니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셔서 나들이할 때면 안내자인 제가 먼저 나가야 하는데 제 딴에는 아무리 빨리 준비를 해도 항상 늦곤 합니다. 그리고 열린문에 기도제목이나 선교비 영수증을 뒤늦게 보내 자주 독촉을 받기도 합니다.

선교지는 외로우셨던 주님을 배우기에 정말 좋은 곳입니다.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요 8:1)

한국어 성경에는 접속사 없이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가셨다고 기록되었지만, 네팔어 성경에는 문장 앞에 ‘떠러(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는 앞 문장의 상황과 반대될 때 사용하는 단어인데, 저는 그 앞의 말씀을 보다가 그만 성경을 붙들고 울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앞에는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레 동안 초막에 거하며 초막절을 지키고 이제 제 8일 마지막 행사를 마친 사람들은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는데 여우나 참새에게도 있는 집이 우리 주님께는 없어 감람산에서 밤을 지내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외로움을 겪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 앞에 눈물 흘리며 주님을 사랑하노라 고백했습니다. 선교지에는 많은 사람과 적지 않은 성도가 있지만, 누구와도 마음을 털어놓고 교제할 수 없으며 받는 것만 원하는 사람뿐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우리의 마음을 약하게 하고 때로는 병들게도 합니다. 그 많은 사람이 주님께 듣고 배우려고만 했지 “주님, 오늘 밤은 어디서 보내시나요.”라고 여쭙지 않았습니다. 여쭙기만 해도 좋았을 것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주님께 나왔지만, 주님께서 지난밤을 어디서 보내셨는지 그리고 아침 식사는 하셨는지 여쭙지 않았습니다. 고독을 친구 삼으셨을 주님을 생각하니 제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가 보냈던 연보로 말미암아 얼마나 기뻐했는지 기억하시지요?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빌 4:10)

오랫동안 교제가 없던 빕립보 교회에서 다시 연보가 와 사도 바울이 크게 기뻐했지만, 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사도 바울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관심! 이는 선교사가 꼭 배워야 하는 덕목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묵묵히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어쨌든 선교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님을 배워가는 좋은 학교입니다.

마지막으로 선교는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이 말씀은 주님께서 기도 가운데 하신 고백인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라고 명하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교사가 선교지에 큰 예배당을 짓거나 훈장을 받고 매스컴에도 오르내리면, 하나님의 큰일을 했다고 생각해 열광하며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도 합니다. 만약, 주님께서 사람들의 열광을 원하셨다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훌륭한 말이나 아주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행차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왕궁으로 가셔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영광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생각하셨습니다. 비록 그 일이 당신께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죽임당하는 일이어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큰일이나 많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영광을 구하는 일꾼들이 각 선교지에서 계속 일어나 주님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현 웅(네팔 선교사)

러릭풀 교회 수실라 자매의 구원간증

저는 네팔 러릭풀의 돌라잇에 사는 수실라 자매입니다. 10학년을 졸업한 열일곱 살이며 러릭풀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네팔의 신분계급인 카스트에도 소속되지 못했고 거주지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시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제 어머니는 제가 열 살, 여동생이 서너 살 쯤 되었을 때 우리를 버리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께 버림받은 후부터 저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고 믿지 못할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제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늘 불안했지만, 하나님만이 가장 친한 친구라 말하며 신뢰하려 애썼습니다. 저는 매주 삼일을 금식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 동안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또한,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며 하나님께 헌신했지만, 제가 나가던 교회에는 복음이 없어 혼란스러웠고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성령님을 받았다며 울고 웃고 춤추며 손뼉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성령님은 어째서 저렇게 무시무시하고 이상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또한, 성령 받기 원했고 방언하는 은사 주십사 기도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려고 예배에 집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러릭풀 모임에서 모든 의문이 풀렸는데 제가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저의 모든 죄가 이미 영원히 사함 받아 매일 회개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어떠한 열심이나 노력도 필요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구원받으면, 바로 그 순간부터 성령님께서 제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겐 뭔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말씀을 보면서 “나는 청함 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선택받은 사람인가?”라는 의구심이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면 매우 두려웠습니다. 저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제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러릭풀 모임의 형제님이 운영하시는 호스텔에 머무르곤 했는데 러릭풀 모임의 토요일 예배를 애타게 기다렸고 예배를 드리고 나서야 보육원으로 돌아갔습니다. 보육원에는 제게 필요한 모든 시설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마음에는 비참함과 불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항상 ‘나는 초청받은 사람인가? 선택받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제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저는 기독교 환경에서 자랐지만,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복음을 믿고서야 비로소 두려움이나 걱정이 사라지면서 제 마음은 편안해졌고 제 눈에는 행복의 눈물이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시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2008년 9월 저는 구원받은 성도임을 확신하고 모임에서 구원 간증을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제 후견인들은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보육원에서 나와 호스텔에서 지내기를 원하고, 러릭풀 모임에 참석하는 저를 보며 자기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러릭풀 모임에서의 구원간증은 허락했지만, 저를 호스텔에서 강제로 끌어내 보육원에서 머물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모임에 참석하려고 집에서 도망쳐 나오기도 하고 울부짖으며 러릭풀 모임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분들은 자기네 교회에 나오길 원했지만, 이미 저는 세속적인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교회를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바른길을 보여주셨지만, 후견인들은 제가 그 길로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제가 그들과 함께 지낸다면, 계속 다니던 교회에 머물러야 하며 다시는 모임으로 갈 수 없게 되리란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변호사를 고용해 최소한 이 년간은 자기네와 함께 지내기를 요구했습니다. 저는 울음을 터트렸지만, 모든 성도가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도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제 보육원을 완전히 떠나 호스텔에서 살기 원하는 제 뜻을 전했지만,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직접 호스텔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 거취문제는 제 선택이 가장 중요하며 제 의사를 무시한 채 그들이 원하는 곳에 머물게 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 후견인들은 왜 제가 그곳을 떠났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 8:22)라는 말씀을 따라 옛 가족을 떠나 하나님께 저를 맡기고 2009년 5월 10일에 침례 받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으로 충분합니다. 세상 즐거움은 이제 필요치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제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심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제 저는 모임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부 모임은 가장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시간에 따라 가장 좋은 것으로 제게 베푸십니다. 따라서 이제 제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이 목적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자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후기

현재 수실라 자매는 한국모임 어느 자매님의 후원으로 러릭풀 모임 장로인 따씨 형제 집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러릭풀 모임에 참석하며 주님께서 허락하신 새로운 부모와 형제자매와 함께 행복한 새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 10학년을 마치고 11-12학년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