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에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로마령 수도였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육로나 해상을 통해서 이미 소아시아와 유럽에 개척된 대부분 교회와 쉽게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지리적 중심지이었을 뿐 아니라 이교의 번성지이기도 했습니다. 에베소는 시리아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전당들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큰 아데미...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곳입니다(행 19:35). 이 아데미(Artemis 또는 Diana) 신전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유대인 회당에서 3개월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했고(행 19:8), 그 다음에는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매일 강론했습니다(행 19:9~10). 그 후에 바울은 얼마간 아시아에 더 머물렀고(행 19:22), 에베소 장로들과 고별사를 할 때는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훈계하였던 것’(행 20:31)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매우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하였습니다.

첫째, (소)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19:10). 역사적으로 바울의 선교가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끼친 게 확실합니다. 따라서 1923년경에 그레코 터키인들이 대거 들어왔지만, 여전히 소아시아 전역에 있는 교회들은 없어지지 않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로 남아있었습니다.

둘째, 당시 에베소에서 번창하던 종교 산업은 도산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악령을 제압하는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복음의 능력 앞에서 마술은 아무 쓸데없고 죄라는 것을 깨달아 자기 죄를 자복하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믿고 생계수단이었던 마술 책들을 즉시 공개 장소에서 스스로 불태웠습니다.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행 19:18~19)

선교에 대한 사도 바울의 전략

사도 바울이 행한 에베소 지역에서의 선교는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에베소뿐 아니라 소아시아 전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공적인 선교를 통해 선교 전략에 관한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성공적인 선교는 사려 깊은 복음 전도에 있다.

바울은 주의 말씀을 전할 때에 다음과 같은 낱말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강론하며(reasoned, 행 17:2), 강론하고(disputing, 행 18:4), 변론하니(persuading, 행 18:19), 증명하여(proving, 행 9:22), 증명하고(alleging, 행 17:3), 변론하니(disputing, 행 9:29), 증거하여(mightly convinced, 행 18:28)...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궁극적으로 확신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심을 알면서도, 그가 할 수 있는 변증을 모두 동원하였습니다.

베드로 또한, 이와 같은 관점을 잘 이해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불교권이나 공산권 그리고 오늘날 다원주의 사고로 무장된 현대인들에게는 청중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과 변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하게 해야 합니다.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종교적인 유대인들에게나 타 문화권 이방인들에게나 복음이 진리임을 ‘강론’하고 주님을 믿을 수 있게 ‘설득’하였습니다.

존 스토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어휘는 바울의 복음 증거가 진지했으며, 사리에 맞고 설득력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는 복음이 참되다는 사실을 믿었기에 청중과 지적인 대화 나누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자기 입장을 뒷받침하고 증명하고자 변증을 다듬고 정돈했으며 회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누가의 분명한 말처럼 실제로 많은 사람이 설득 당했다.”

바울은 적절한 복음 진리에 대한 이해의 기초 없이 결단을 호소하는 감정적인 전도 대신에 복음을 가르치고, 변증하고, 믿을 수 있게 설득하려 애썼습니다. 또한, 짧은 시간에 전하고 구원받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오랫동안 복음의 핵심 진리를 전하면서 열매 맺기 원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공산권, 불교권, 진화론으로 세뇌된 현대인들에게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전하는 연대기적 성경공부나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변호하여 증명하는 ‘변증적 복음전도’가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4~5)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세상의 지혜였으며, 변증의 사용이 아니라 헬라 철학자들의 수사학이었습니다. 물론 변증이 성령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의지하는 것 역시, 변증을 대체하는 게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전도자이신 성령께서 우리가 전도할 때,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오직 구도자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고 복음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심을 알 때 우리는 더욱 성령을 의지하면서 전도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의 회심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회심시키심을 알 때, 성도들은 더욱 활발히, 더욱 열심히, 그리고 더욱 확신 있게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2. 성공적인 선교는 제자들을 훈련하는 데 있다.

소아시아 전역의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바울이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이 년 동안 매일 같이 말씀을 강론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9~10) 유대인 회당의 일부 사람이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 (행 19:9)하였기 때문에 결국 두란노 서원을 임대하여 그곳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강론하였습니다.

‘강론’한다는 것은 서로 주고받는 토론식 강의를 말합니다. 바울은 제자들과 함께 대화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진리의 말씀’인 것을 믿도록 설득하는 ‘변증적 복음 전도’를 하였습니다.

아주 오래된 서방역본에서는 바울이 그곳에서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강론하였다고 첨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손으로 자신과 동역자들의 필요를 충당했다고 (행 20:34) 한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강의 전, 시원한 오전 시간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면서 고된 노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행 19:12). 오전 11시 전에는 두란노가 강당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바울의 강론을 들은 제자들과 청중들은 진리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당시 에베소에서는 오후 1시경에 대부분 낮잠을 잤기만, 소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증거 되기까지, 바울과 제자들은 더운 지방에선 꼭 필요한 달콤한 휴식과 낮잠을 희생했습니다. 바울은 5시간 동안 복음을 전하고도 다시 작업장으로 갔을 겁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20) 바울과 제자들은 이 년간이나 이러한 생활을 계속했는데, 이는 3,120시간 동안 복음을 전한 셈입니다.

성경이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라고 기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과정은 제자들이 주의 말씀으로 충분한 훈련을 받게 했을 겁니다. 제자들은 에베소라는 작전 기지에서 파송을 받고 소아시아 전역으로 떠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을 겁니다. 그리하여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교회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이 세워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도 공생애 기간에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며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막 3:14) 그들을 훈련하셨습니다. 주님의 선교 전략은 “전도하며”, “귀신을 쫓는 권세”를 가진 훈련받은 제자들을 통해 소아시아 전역을 복음화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아시아 전역의 복음화는 바울이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그들과 함께 복음을 변증하면서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훈련된 제자들을 통해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된 것입니다. 바울은 제자들을 훈련하고 양육했으며 또한, 에베소교회에 여러 장로를 세워 성도들을 진리로 보호하고 돌보게 하였습니다.

결론

로마제국의 전략적 도시들에 집중했던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은 현대 선교에서도 여전히 유용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경제나 교육의 목적으로 대도시로 몰려왔다가 나중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합니다. 바울처럼 장기간 대도시에서 복음의 진리를 변호하며 믿도록 설득하는 “변증적 전도”를 충실하게 행한다면, 오늘날에도 에베소에서의 역사가 재현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증적 전도”를 통해 거듭난 성도들이나 훈련된 제자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감으로써 전 지역을 복음화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이방인 선교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8~9)

김 종만(남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