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태지역 세 모임

1992년 1월 14일 태국에 입국한 후 2005년 8월까지 북태 지역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치앙마이에 거주하며 많은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인도하심과 사랑으로 준비된 구도자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 치앙마이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또한 치앙마이에서 시작된 복음의 불꽃이 계속 번져나가 메짠 모임과 쎈숙 모임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세 모임을 통해 참된 은혜의 복음과 신약교회원리 및 성도의 삶에 대한 가르침이 계속 주변으로 전파되어,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기존의 교계 내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북태 지역뿐 아니라 중국 남서부지역까지 복음의 불꽃이 번져 마침내 중국 남서부지역의 K, C, Y, S 등의 도시에 모임들이 세워지는 일에 치앙마이 모임의 성도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참으로 놀라운 주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었습니다.

방콕으로의 이주를 위한 기도

이제까지 북태 지역의 세 모임을 주님께서 놀랍게 축복하시고 사용하셨지만, 그 과정들을 돌이켜보면 결코 순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대세력들과의 영적 싸움, 사탄의 교활한 궤계와 성도들의 연약함 등으로 인한 내부 분열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면서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지역교회들이 기반을 다져가게 되었습니다. 메짠 모임과 쎈숙 모임은 아직도 확실한 리더십이 세워지지 못했고, 교회의 원리와 성도들의 삶 등에서도 연약한 부분들이 보였지만, 나름대로 주님의 은혜 속에서 북쪽의 세 모임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리더십이 세워져 있는 치앙마이 모임을 중심으로 현지 성도들 스스로 영육간에 도움을 주게도 되었고, 스스로 교회캠프들을 주관하는 등 세 모임이 자립적으로 움직이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세 모임이 다 교회 부지와 건물들을 구입쪾소유하게 되어 재정적으로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목적이자 바람이 현지교회의 자립 및 자급자족인데, 북태의 세 모임들은 그러한 모습들을 조금씩 갖추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을 선교사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경향도 있어, 그것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하는 자와 의지하려고 하는 자들과의 선한 줄다리기의 싸움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동안 계속 마음에 품어왔던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태국의 수도이자 동남아의 정치쪾교통의 중심지요 허브라 할 수 있는 방콕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북태의 모임 성도들 중 일꾼을 세워 방콕으로 파송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현지 성도들보다 우리 가정이 그 일을 담당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서 사역을 하기보다는 현지교회의 자립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현지 성도들에게 맡겨 스스로 섬기며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넘겨주고, 선교사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해 새롭게 선교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또한 방콕은 대도시이기 때문에 영적쪾경제적쪾교육적인 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기존의 현지 성도들보다 선교사인 우리 가정이 그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적합하다고 분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국 선교의 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방콕에 모임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태국 선교 역사가 10여년이 지났기 때문에, 성도들의 자녀들인 제 2세대들이 청년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시기가 되었으며, 필요에 따라 대도시로 이주하여 공부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 만약 방콕에 모임이 없다면 그들의 영육간의 필요를 채워줄 수 없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방콕은 사탄의 역사가 심해 환락, 재물, 범죄 등의 위험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쉽게 유혹에 빠져 들 수가 있는 곳이라서, 영육 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임을 세우는 일이 절실히 필요한 곳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과 필요를 보면서 우리 가정의 방콕으로의 이주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통한 확신

상황과 필요를 볼 때 북태 지역을 떠나 방콕으로 이주해 새로운 모임을 개척하는 것이 합당하다 분별이 되었지만, 막상 북태 지역을 떠나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먼저 우리 부부의 심신이 연약해 있었으며(모임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솔직히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안주하며 편히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문제(방콕의 학교로 아이들을 전학시키는 것이 여건상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주은, 주리는 치앙마이에 놔두고 우리부부와 막내인 익찬이만 데리고 방콕으로 와야만 했음) 등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직도 연약한 북태의 세 모임을 떠날 경우 현지성도들 스스로 영적으로 굳건히 서서 모임들을 잘 운영해나갈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개인적인 기도 끝에 때가 되었다 싶어 공개적으로 기도제목을 내놓기 시작했더니 모든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우리 가정의 방콕으로의 이주를 반대하였습니다.

한 목소리로 우리 가정이 북태의 모임들을 떠날 경우 모임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심한 염려를 했습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왜 편한 치앙마이에서의 생활을 접고 누구라도 가기 싫어하는 방콕으로 역이주를 하느냐며 우려의 충고를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반대들을 접하며 자신과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그들의 염려와 우려들이 사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연약한 모임들의 장래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고, 복잡한 방콕에서 여러 문제들을 안고 새롭게 시작할 삶에 대해 영 자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갈등 속에서도 영적인 상황과 필요를 고려해 볼 때마다 방콕으로의 이주가 주님의 뜻으로 분별되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함께 이 일을 주님께 맡기고 있을 때,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해 오신 것처럼 이번에도 합당한 말씀으로 확신을 갖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말씀을 상고하고 있는데 사무엘상 25장 1절 말씀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애곡하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 가니라.”(삼상 25:1)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선지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다윗을 특별히 선택하셔서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사용하실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자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살아있는 동안 소원 중 하나는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며, 하나님이 다윗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죽기 전까지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오히려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을 봐야만 했습니다. 결국 사무엘 생전에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오히려 사무엘이 죽으니 의지할 곳을 잃은 다윗은 바란 광야로 더 도망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사무엘은 죽었지만, 그 후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을 북태 모임들의 실정에 적용해보며 방콕으로의 이주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북태 지역의 모임들이 현재는 연약해 보일지라도 그들을 향한 주님의 계획과 사랑은 계속될 것이며, 비록 현재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들을 향한 주님의 계획이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그들을 주님의 은혜 속에 맡기고 방콕으로 이주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말씀에 의한 분별을 나누자 북태 모임들의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우리 가정을 방콕으로 파송하기로 결정을 하고 화려한 파송식까지 베풀어 주었습니다. 선교사로 파송될 때 한국에서 처음 파송식을 해주었고 다시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이주할 때 두 번째 파송식을 갖게 되니 주님의 은혜에 많은 감동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예비하심으로 시작된 방콕에서의 모임개척

방콕으로 이주할 때 현지 성도들을 아무도 동반하지 않기로 하고 오직 우리 부부와 막내인 익찬이만 이주하였습니다. 아직도 연약해 보이는 북태의 모임들 중에서 성도들을 데리고 방콕으로 이주할 경우 북태의 모임들이 더 연약해질 것이 염려되기도 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모임을 개척하는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방법과 지혜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실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방법과 지혜를 사용할 때는 사람이 드러날 것이지만,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의지해나갈 때 주님께서 영광을 취하실 수 있기 때문에, 방콕에서의 첫 걸음부터 주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철저히 믿음으로 나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주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볼 수가 있지만, 그 과정 중에 있을 때에는 인내와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한 것을 체험케 됩니다. 방콕으로 이주한 후 주님의 은혜로 익찬이 학교 문제, 거주지 문제 등은 해결되었지만 어떻게 영혼들을 만나며 사역을 시작해야 될지 난감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전에 치앙마이모임에서 침례를 받았지만 여러 가지 연유로 인해 모임을 떠나 방콕에서 생활하던 (그중에는 치리문제로 모임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가정의 방콕 이주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당시에 모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정들이 있었지만, 복음의 씨앗과 교제의 그리움 등이 남아 있어 스스로 연락을 해온 것입니다. 이렇게 몇 명의 옛 성도들이 돌아온 후 그들과 더불어 방콕생활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연고가 닿는 사람들은 먼 길을 마다하고 쫓아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복음의 불씨가 서서히 번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집회장소를 인도해주신 주님

처음 얼마동안은 우리 가정만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 가정집회 형식으로 집회를 가지다가 몇몇 성도와 구도자가 연결되니 장소가 협소하게 되고, 마침 방콕 내의 타지역에 있는 한 가정이 정기적으로 와서 집회를 해줄 것을 요구해 와 그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매주 복음집회 형식으로 모여 결국 그들 중 몇 명이 침례를 받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의 장소가 우리의 거주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또한 우리 거주지 가까운 곳에 몇 명의 구도자들이 연결됨에 따라 결국 다시 우리 집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장소의 협소함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던 중, 우리가 세 들어 있는 아파트 1층의 사무실 방을 임대하여 집회장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1층의 사무실 방을 집회장소로, 9층의 우리 집을 식당 및 교제장소로 함께 사용해 오다가 성도들이 늘어남에 따라 더 큰 장소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약 1년 반 정도 1층의 사무실 방을 사용해오며 더 큰 장소를 얻기 위해 방콕모임의 성도들이 헌금을 모았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태국선교를 위해 함께 기도해왔던 한국의 한 성도가 직접 방문하여 협소한 집회장소를 보고 돌아간 후, 방콕모임의 장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한 후 헌신하게 되고, 함께 기도해 왔던 몇몇 한국 모임들이 사랑의 헌금을 보내주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집회장소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방콕은 대도시이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생각보다 높아 집회장소 마련이 쉽지가 않았었는데, 주님께서 기도한 대로 응답해주셨습니다. 사실, 준비된 금액으로는 우리가 모이기에 적합한 장소를 구입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지만, 마침 적합한 규격과 모양을 갖춘 사무실 방이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구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집회장소를 구입하는 데 있어 주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이곳 방콕모임의 성도들이 새로운 장소에 필요한 도구 및 기자재(음향시설, 냉온수기, 부엌기구 등등)등을 자발적으로 헌물해와 현재의 집회장소가 마련되었습니다.

방콕모임 성도들의 헌신 및 모임의 전망

방콕모임이 처음 시작될 때는 우리 가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청소 및 음식 마련(만찬, 애찬), 집회 때마다 사회, 기도, 말씀, 복음전도, 찬양인도 등도 우리 부부가 도맡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북태지역에서 있을 때, 다른 성도들과 함께 은사에 맞게 책임을 분배해 섬겼던 지난 시절들이 그리워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와 위로가 함께 하셔서 1년여가 지난 후부터는 사회 및 찬양인도 등을 담당할 형제들을 붙여 주셨고, 지금은 청소 및 애찬준비 등도 성도들이 조를 나누어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집회장소로 옮긴 후부터는 아파트 단지 내의 아이들을 연결시켜주셔서, 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주일학교 및 학생회도 시작하여 연령과 배경에 맞게 복음과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방콕모임 성도들의 헌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몇몇 형제들은 직장을 얻을 때부터 토요일과 주일을 쉬는 곳을 선택하여, 비록 보수가 적을지라도 주님의 일을 담당키 위해 기꺼이 감수하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의 아이들 중 다수가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며, 복음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콕모임이 이곳으로 이주해온 후로 거의 매일 교회에 수시로 출입하며 탁구도 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말에 있었던 교회의 1일 캠프에도 중학생 이상의 일곱 학생들이(주일학교 학생들이 더 참석하고자 했지만 모임에서 연령을 제한했습니다.) 부모의 동의하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믿지 않는 가정들이지만 참가비까지 지불하며 아이들을 보낸 것은, 그만큼 방콕모임을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이 구원받고 장래의 모임의 기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이들과 가깝게 지내며 헌신하고 있는 방콕모임의 청년 형제자매들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뿐 아니라 방콕모임에는 태국 자매와 결혼한 미국 형제도 있고, 태국 형제와 결혼한 중국 자매, 태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 형제, 또한 방콕 근교의 일본회사에 파견근무 중인 일본 형제 등등 다국적으로 성도들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태국 성도들 가운데에는 전통 중부지역 태국인들 뿐 아니라 중국계 태국인들도 있어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등 실제적으로 대도시 및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인 방콕의 환경에 부합하는 인적 자원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방콕 모임을 중심으로 태국 전역뿐 아니라 주변국까지도 영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민족, 다양한 언어 등이 주안에서 성령으로 하나가 될 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지만, 자칫 사탄이 침투할 약한 부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말씀을 기반으로 해서 영적으로 살아있는 모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동안 방콕모임을 통해 교도소 사역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며, 엠마오 통신강좌 등과 같은 특수사역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방콕모임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게 이끄실 주님의 신실하심에 모임을 의탁드리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김 선 호(태국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