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전국 교회의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된 작은 형제가 인사를 드립니다. 1985년 4월 26일 위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고 1996년 5월 논산에서 첫 예배를 드린 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사 구원받는 영혼들을 더하셨으며, 이제까지 은혜로 감싸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은혜를 더하사 전국교회 형제자매님들을 통해 기도와 물질로 큰 사랑을 입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2004년 10월경 새벽 기도시간에 주님께서 이사야 42장 6-7절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이 말씀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메시아 사역에 관한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2005년 2-3월경에 새벽 기도시간에 이사야 54장 2-3절 말씀을 하셨고, 그때도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회복에 관한 말씀으로 이해하고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과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하며 네 자손이 열방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 저에게 적용시킬 수 없는 말씀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외국에 복음 전하러 나갈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저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2005년 4월경 어떤 성도로부터 한 가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젊은 자매가 동티모르에 평화 협력단원으로 가서 1년 근무를 마치고 호주 GLO에 와서 간증을 했는데, 동티모르 사람들이 너무 가난하고 불쌍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나중에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간증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참 믿음이 좋은 자매도 있구나.’ 아무튼 장하다고 생각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제 마음 깊이 동티모르에 대한 관심이 차츰 자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잊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기에 견디다 못해 인터넷에 들어가 동티모르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본 것처럼 후회하며 덮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제가 선교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 저는 나이가 많이 들었으며

2. 언어에 능숙하지 못하고

3. 제가 섬기는 교회가 저를 전혀 도울 수 없는 연약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후 주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저에게 관심을 갖게 하셨는데, 저는 그저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뿐이었습니다. ‘주님, 저는 죽은 나사로처럼 이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은 자입니다.’

새벽 말씀과 기도시간에 주님께서 요한복음 12장 12-17로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17절이 이렇게 읽혔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목격했던 이들로 인해 내가 영광을 얻었노라.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나사로처럼 움직여 내가 너에게 지시 하는 곳, 동티모르로 가기만 해라.”

그러나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러나 제가 가기에는 나이가 많습니다.”

몇 주가 지나서 새벽 경건의 시간에 주님은 저에게 여호수아 14장 6-15절 말씀으로 갈렙의 청구하는 장면을 보여 주시면서, “네 나이 아직 60도 되지 않았지 않느냐? 갈렙을 보아라. 그는 나이가 85세였지만 그때나 이제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어서 모세가 자기에게 약속한 산지를 달라고 청구하였고 취하였느니라. 너는 부끄럽지도 않느냐?” 라고 도전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주님, 저는 벙어리와 방불한 자입니다.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언어를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2005년 9월쯤 새벽 기도시간에 주님께서 출애굽기 4장 10-16절로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는 사람의 눈과 귀와 입을 지었느니라. 나는 사람으로 말하게 하기도 하고 벙어리 되게 하기도 하는 전능자니라.”

그래도 제가 “예.”라고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2005년 11월 새벽 기도시간에 여호수아 18장 3절 말씀으로 어느 때 까지 지체하겠느냐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어려움이 닥쳐왔고, 그 가운데 번민하면서 2006년 5월 8일 새벽에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저에게 동티모르에 관하여 말씀해오셨는데 저는 다시 한 번 더 확인 하고 싶습니다. 이런 저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한 번만 더 말씀의 확신과 증표를 보여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까지 100일 동안 저녁 금식기도를 하겠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8일째 되는 날인 2006년 5월 16일 새벽 기도시간에 주님께서 신명기 1장 29-33절로 확신을 주셨고, 그날 오전10시에 증표를 보여 주셨습니다. 서울북부교회 자매선교회에서 저에게 귀한 물질로 사랑의 교제를 해주셨습니다.

서울북부교회 자매선교회는 큰 일을 하는 모임인데 도와주고 싶은 연약한 교회가 어디 저뿐이었겠습니까? 이는 주님께서 저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주님께 동티모르에 갈 경비를 위해 기도했고, 주님께서는 몇 달 후 전주 기린로 교회를 통해서 많은 경비를 충당해 주셨습니다.

2007년 6월 인천- 홍콩 - 호주 시드니 - 호주 다윈 - 동티모르 딜리까지 비행시간만 왕복 40여 시간이 걸리는 곳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그곳에 가서보니 참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1. 언어만 해도 4개 국어 -포르투갈어 / 바사어(인도네시아) /떼뚠 (동티모르 토속어)/ 영어(서류작성 등)

2. 1998년경 동티모르 120만 인구 중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40만 명 학살. 그 중에 제가 본 신문에 실린 사진은 30대로 되어 보이는 여성이 전신 나체로 엎드러져 죽어있는 사진이었는데, 그녀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담뱃불로 지져 죽였다는 기사가 덧붙여 있었습니다.

3. 현재 수도 딜리에 있는 가옥 1/3은 부서져 있는데 앙상한 벽만 남아있습니다.

4. 90%의 실업자. 바닷가에 셀 수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하염없이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5. 생활비는 우리나라의 2-3배. 아기배추 1포기에 3-4달러(USD-미국달러를 사용함)

6. 정세 불안 - 오후 6시에는 모든 상가 철시하고 철 대문을 닫습니다. 대사관에서 수시로 주의 경보를 발합니다.

7. 제일 큰 병원에는 오래된 X-레이 기계 한 대가 있을 뿐인데 젊은 일꾼이 왔다가 밤에 아이가 병이라도 나면 큰 어려움이 될 것입니다

8. 천주교 마당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막들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수십 대의 소방호수로 쏟아 붓듯이 엄청난 빗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9. 수도 딜리를 빼고 지방은 12개 소도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루 1-2끼밖엔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10. 머리에 이가 많아 이를 잡는 광경을 자주 봅니다. 샴푸를 살 돈이 없기에 그렇답니다.

다녀온 2007년 7월 초 새벽에 주님은 예레미야 1장 4-8절 말씀을 묵상하게 하셨고, 저의 지난날 가운데 숱한 죽음의 위기마다(6.25사변 / 월남 파병 / 2003 협심증 중태) 저의 방패가 되어주신 신실하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심장 깊숙하게 깨닫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사랑에 눈물로 감사하며 저의 사랑을 고백하고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 말씀에 충성을 다하여 순종하는 것만이 그분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마음에 작정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제가 이런 사랑을 받고 이제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생존하여 참된 기쁨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유일하고도 참된 소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입니다.

그들에게 뚫린 곳은 오직 하늘뿐입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우체국에는 집배원도 없고, 주소도 군 단위 까지만 있고 동 이하는 주소가 없습니다. 혹 소식을 주시려면 열린문선교후원회로 연락해 주십시오.

저를 불러 하나님의 사랑으로 위로하여 주시고 동티모르 복음 전도와 지역교회 개척을 위하여 기도와 물질로 동참하여주신 형제자매님들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기도제목

1. 비자와 거처할 장소를 위해

2. 언어습득 (떼뚠어)

3. 수도 딜리와 지방 12개 지역에 복음을 전할 제자 훈련을 위한 장소와 일꾼들을 위하여

4. 2012년 UN 경찰 전면철수 이후 사회 안정을 위하여

감사합니다.

박복준, 송점순(기선, 인용) 형제자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