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그리스도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신자라면 이 지상명령 아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이 지상명령을 어떻게 받들었는가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한다. 어떤 신자는 직접 선교지에 가는 것으로, 또 다른 신자는 선교지에 나간 선교사를 후원한 것으로 이 명령에 순종하였음을 주님께 고할 것이며, 주님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는 말씀으로 화답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신자는 선교사이다. 직접 선교지에 나가는 선교사 이든지 아니면 그를 보내는 선교사이다. 그리고 이 두 선교사 간에는 협력과 동역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단체적인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 주님은 이 명령을 단순히 신자 개인에게만 맡기시지 않으셨다. 우리는 이 명령을 단체적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룰 때 보다 효과적으로 받들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이렇게 효과적이고 또 효율적으로 섬길 때 주님의 선교는 보다 많은 열매를 맺게 되고, 이는 곧 아버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된다.

보다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차원에서 이 명령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에 있어서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보게 된다. 성령의 인도,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선교사, 선교사를 파송한 지역 교회의 끊임없는 기도의 지원, 선교의 발전을 위한 희생적인 재정 후원, 그리고 선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선교사를 보조하고 후원하는 사역 등이다.

중국내지선교회의 설립자인 허드슨 테일러의 경우, 그는 처음에 매우 비효율적인 한 선교회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단신으로 중국에 들어갔다. 많은 곤경을 당하고 어려운 체험을 겪은 후에야 하나님은 그에게 휴식을 허락하셨다. 그 기간 동안 그는 한적한 곳에서 거대한 나라 중국의 내륙지방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새로운 선교회를 시작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과거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인 주먹구구식 방식으로 운영되는 후원단체가 아니라,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후원 프로그램을 갖춘 선교 후원 단체의 필요성을 본 것이다. 이러한 영적 부담과 확신을 가지고 시작된 중국내지선교회는 이후 중국선교를 위한 엄청난 일들을 해내게 된다.

한국 모임의 경우, 짧은 선교의 역사에 비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냈다. 돌아보면 세계를 주관하시는 주님의 역사와 선교사들의 자발적인 헌신, 그리고 성도들의 희생적인 지원 등에 힘입어, 오직 선교에 대한 열정과 믿음만으로 시작한 선교 사역을 일구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좀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성공적인 선교사역의 이면에는 사람, 기도, 재정지원 및 후원정책 등이 효과적으로 작용했음을 볼 수 있다.

선교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반드시 성취해야할 비전이다. 따라서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매우 실제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믿음 선교(FAITH MISSION)의 정책 하에 세계선교를 주도해온 OMF의 데니스 레인도 ‘선교와 돈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사실 선교의 후원을 말할 때 자연스럽게 재정 후원과 동일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분명한 것은 선교의 발전과 아울러 선교후원금 또한 증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후원금을 합당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 이처럼 합당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실천에 힘쓰는 것을 선교 정책과 실행이라고 한다.

선교는 단순히 선교사를 보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다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선교 정책과 실행이 필요하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도착한 이후를 생각해보자. 선교사는 우선적으로 거주할 집을 구해야 하고, 언어를 습득해야 하며,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이렇게 신임 선교사가 가정을 이끌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타국에 갈 때 생활비만을 가지고는 정착할 수가 없다. 큰 가구들은 현지에서 구입해야 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방세를 3-6개월치를 선불로 내야 하는 곳들도 있다. 그리고 언어 습득을 위한 후원은 최소한 2년 정도는 필요하다. 언어 습득을 하지 않고 사역에 뛰어들게 되면 현지인들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선교를 할 수 없게 된다.

성격이 급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고려해볼 때, 신임 선교사의 언어 습득 기간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선교지에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선교사가 언어습득 기간임에도 빠른 선교의 결과를 기대하고 또 선교사를 종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에게 심각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며, 이 기간을 충분히 고려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선교사를 후원해야 한다.

또한 자녀교육과 그들의 장래 문제는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계속 사역할 수 있는 여건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패트릭 존스톤은 영국 선교사 가운데 중도 포기하는 경우에 중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자녀교육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들에게는 선교사 자녀교육에 대한 재정 문제보다는 해외에서의 교육제도를 보다 심각하게 생각한다. 우리 한국 선교사 자녀들도 이중삼중 부담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하나가 선교지에서의 교육제도와 언어 문제이고, 두 번째가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문제이다. 세 번째 문제는 타문화권에서 자라는 선교사 자녀들의 정체성 문제다. 네 번째는 바로 선교사 자녀교육비 증가 문제이다. 대부분의 경우 현지 학교는 비교적 비용이 싼 데 비해 교육의 질이 다소 저조한 편이다. 현지인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선교사들도 많이 있는데, 대부분의 외국인 학교는 학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교사 생활비보다 더 값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 자녀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갈 때 즈음이면 고민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 모든 문제들을 선교사 혼자서 감당하거나 해결해야 한다면, 이것은 필시 버거운 일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임보다 선교의 역사가 오래된 선교단체들의 경우, 일관성 있는 선교정책을 세워서 추진하고 있다. 선교사의 정착금에서부터 시작해서 선교사의 생활비, 사역비, 자녀교육비, 특별 프로젝트비 등 예산을 편성하여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교사 생활비나 사역비 등은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매달 들쑥날쑥 한다면 이는 선교에 있어서 틀림없이 매우 불안한 요인이 될 것이다.

어떤 선교 단체의 경우에는 선교사를 관리하고 행정과 정책으로 돕는 행정 선교사를 두고 있으며, 현지 선교사를 후원하는 것 못지않게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행정 선교사는 현지 선교사의 필요한 모든 부분들을 살피고, 미리 예비된 절차에 따라 그들을 섬긴다.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들을 충분히 감안하고 고려한 프로그램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우리 또한 이처럼 체계적인 후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선교사의 성공적인 사역 여부는 결코 선교비의 많고 적음에 비례하지 않는다. 선교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선교비가 선교지에 양약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독약이 될 수 있다. 사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선교비라는 명목의 후원도 없었고 특별히 후원해 주는 선교단체도 없었다. 이들의 유일한 후원자는 예수님뿐이었다.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갈 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오래 전에 사역하던 한 선교사는 ‘원주민들이 나로부터 복음 외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하였으며, 나도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그들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 모든 선교사가 다 이러한 마음으로 선교에 임할 줄로 안다. 하지만 실제 선교의 현장에는 빵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성전 미문 앞에 늘 먹을 것을 구걸하던 앉은뱅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 아닌 먹을 것, 입을 것, 병 고칠 약을 위해서 선교사를 방문한다. 이 경우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을 수가 없다. 빵과 복음이 함께 할 때 선교가 역사하기 때문이다.

현재 열린문선교후원회에서 이러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선교사역에 필요한 행정서류 발급과 지원, 선교사와 가족을 위한 목양 프로그램 운영, 선교 후원자 확보 및 관리 등 선교사를 후원하는 적극적인 사역을 펼치고 있다. 미진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현지 선교사들을 섬기고 있다. 기본 정신은 선교사들과 파송교회 또는 후원교회를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열린문선교후원회는 선교사들과 후원교회간의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 선교를 더욱 증진시키는 사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선교후원단체는 선교사와 후원자 간의 의사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일단 선교사가 본국을 떠나게 되면 선교후원단체는 파송교회 또는 후원교회가 계속해서 그 선교사와 접촉해야 할 책임감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성도들은 파송교회 또는 후원교회가 선교사를 격려하는 방법을 자동적으로 잘 알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를 섬기는 선교후원기관이 선교사를 돕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내놓으면 교회들은 대부분 이 제안을 환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선교후원의 밤과 같은 집회를 통해 선교사를 초청하여 선교지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선한 역사에 대한 선교보고를 듣게 하면 성도들은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선교에의 부름에 순종하게 된다.

그밖에도 후원단체의 역할은 많다. 예를 들어, 선교사가 선교지에 들어간 초기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편지나 이메일 등을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열정도 식게 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선교사를 후원하기 때문에, 혹은 단순하게 관심이 적어져서 편지를 쓰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직접적인 만남을 중시하는 아시아에서는 이런 현상이 좀 더 두드러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대면하는 것이 불가능한 선교사의 경우, 만일 파송교회 사람들이 평소에 편지 쓰는 것이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매우 외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열린문과 같은 선교정보지를 정기적으로 발간하여 새로운 선교소식을 사진과 함께 제공하게 되면, 선교사 자신도 정기적으로 편지를 써야만 하는 고충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성도들도 계속해서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의 최신 선교소식을 접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통한 후원을 할 수 있다. 또 최근 선교지의 소식을 접한 성도들이 편지나 이메일로 관심을 표현하게 되면, 본국을 떠나 늘 사람이 그립고 또 외로움을 느끼던 선교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다.

열린문 선교정보지는 후원자들에게 새로운 선교정보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영감어린 글을 통해서 선교사들에게 영적 양식 또한 제공해주고 있다. 어떤 선교사는 영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신임 선교사는 열린문에 실린 글을 통해 선교의 소명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간증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선교정보지는 단지 선교사의 기도제목만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전문성을 갖춤으로써 선교사와 후원자들을 더욱 밀착시키는 역할을 감당함으로 주님의 선교를 확장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이에 대한 선교사와 후원자들의 기도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제 선교사와 선교후원단체 간의 협력과 동역은 갈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서로를 의지할 때, 주님의 선교는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문선교후원회와 같은 선교후원단체는 선교사를 돕기 위한 기관이다. 지난 한국 모임의 선교의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 열린문선교후원회는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선교사를 후원해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또한, 더 효과적으로 선교사를 도울 수 있는 후원사역들과 프로그램들을 더욱 개발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종 수(편집인)

참고문헌: 선교후원과 재정정책 바르게 하고 있나 / 강승삼 / 월간 목회 1997년 8월호

보내는 선교사의 사명 / 니일 파일로 / 누리콤

선교사와 선교단체 / 데니스 레인 / 두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