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 호(태국 선교사)

1.들어가는 말

시편 90편의 저자는 모세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인생의 한계 내지는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며 써내려간 시편이라고나 할까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심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 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사는 삶이며, 또 그 지혜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시간을 계수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 시편 90편에 기록된 삶의 원리에 대한 교훈은,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지혜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하여 줍니다. 불신자들이야 삶에 대한 진정한 지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헛된 목적을 세우고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며 헛되이 살다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당연히 주안에서 합당한 삶의 목적을 세우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은 현재 주어진 환경가운데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며 삶을 영위해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며 지금의 환경과 삶의 방향이 과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최선의 선택일까 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 보다 더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한 첫 걸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소위 말하는 세상의 현인도, 20세를 “약관”이라 하여 벼슬길(사회)에 나아가는 나이라 하였으며, 30세는 “이립”이라 하여 학문의 방향과 의지(삶의 방향)를 확고하게 세우는 나이라 하였고, 40세는 “불혹”이라 하여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 하여,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좌우를 돌아보는 곁눈질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학문과 지혜를 감히 하나님의 지혜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불신자들도 삶의 목적과 지혜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이 현인의 말을 통해 알 수가 있을 듯합니다. 자, 이제 질문을 해봅시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고 나를 향하신 주님의 계획일까?’

20대가 되기 전에는 위의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할 수 있고, 50대 이후부터는 현재 주어진 방향과 환경을 바꾸기에는 너무 많이 얽혀져 있는 책임과 이해관계가 있어, 위의 질문에 대해 생각하기조차 버겁고 특히 방향과 환경을 바꿔 나가는 실천을 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20대부터 40대에 속해 있는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삶의 방향 내지는 주님의 나를 향한 계획으로 삶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혹시라도 있지 않을까요? 또는 그렇게 삶의 방향과 모습을 바꾸는 것이 주님의 뜻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간증

필자의 경우는 20대 중반에 들어섰을 때, 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30대 초반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새롭게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학업과 군대의 의무를 마치다 보니 20대 후반이 되었고 그 때부터 사회초년생으로서 직장에서 사회생활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 조직구조 내에서의 적응 및 성도로서의 신앙유지, 교회와 사회생활의 균형 내지는 어두운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할 때 당하는 어려움 등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사회생활은, 주님을 더욱 닮아가고 말씀을 삶으로 배워나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했던 과정이었었고, 사회생활의 실제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신앙상태 점검 및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로서 무엇을 위해 삶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지혜로운 삶인가 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고, 결국 주님 나라 확장, 즉 영혼구원에 투자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게 되니, 이미 어느 정도 삶의 윤곽이 보였습니다. 30대에는 어떤 모습과 위치로 있을 것이고 40대, 50대, 60대에는 어떤 형태의 삶의 모습이 될 것인가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고 있는 삶의 방향과 모습을 좇아가고 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성도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주안에서의 삶의 목적과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당시 제 마음 속에는 나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 정말 이 길인가 라는 의문이 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을 성경 말씀과 환경 속에서 찾기 시작했고, 결국 주님의 인도하심과 부르심에 따라, 선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확신과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싶어도, 들을 기회가 없고 들려주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암담하게 심판을 향해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 삶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고 지혜로운 삶이 아닐런지요? 이 크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구원받은 각 자녀들을 목적에 따라 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부르시어 쓰시고 계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요?

3. 선교지에서의 경험

주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으로 30대 초반에 한국을 떠난 후 지금까지 선교사역을 담당해오면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으로 인해 이루어졌다고 고백 드리게 됩니다. 특별히 30대 초반이라는 연령이, 선교지 언어 및 문화를 익히는데 적절한 연령대였던 것 같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 및 선교지에서 겪게 되었던 여러 영육간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배우는 데에도 비교적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보다 더 어린 나이였다면, 영적 경험 및 사회경험 등이 부족한 상태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로 인해 대인관계, 영적 전투, 인내심 등등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 그보다 더 높은 연령에 선교지에 나왔더라면, 언어 및 문화를 익히는 것이 더 더디고 어려웠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선교 초창기 시절, 복음전도를 할 때에도 왕성한 열정과 체력, 담대함을 바탕으로 쉴 사이 없이 분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의 은혜와 더불어 젊은 연령이라는 이점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 믿어집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생겨남에 따라 지역교회를 굳건하게 세워나가기 위해 성도들을 향한 여러 가르침들이 필요했고 선교사로서 리더십과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했는데, 이 때 많은 영적 부족함과 시행착오를 겪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30대의 연령대에서 보일 수 있는 부족함과 시행착오는 오히려 배움의 계기가 되어 영적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이 30대 연령의 이점 중 하나가 아닐 런지요? 만약 더 높은 연령대에 있을 때 이와 같은 부족함과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면, 본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어려움이 되고 인정과 정정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체험들을 통해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선교사 후보의 적절 연령은 20대에서 40대 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각 개인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볼 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선교지에서 여러 연령대의 선교사들을 접하고 있는데, 선교사들의 연령대에 따라 사역의 방향과 그 사역에서의 위치 등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게 비쳐질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젊은 연령대의 선교사일수록 동적이고 일 중심의 사역방향이 되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연령대가 높아짐에 따라 정적이고 사람 중심의 사역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연령이 높아질수록, 활동적이고 앞에 나서서 해야 될 일들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후배 선교사들이나 젊은 현지인 일꾼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선교사의 위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런지요? 연령과 연륜이 높아져도 계속 같은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면, 비효율적, 비생산적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계속 고여 있게 되어 결국 썩은 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겠지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각자의 연륜과 연령에 맞는 위치와 자리에서 주님을 섬길 때, 더욱 더 효율적이고 합당한 모습으로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육적 연령을 영적 연령에 연관시켜 판단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육적 연령에 따른 한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30대에서 할 수 있는 사역의 방향과 위치가 있으며, 40대, 50대에게 합당한 또 다른 사역들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도 30대에서 했었던 사역의 방향과 위치가 있었으며, 거의 20년이 지나고 있는 현재의 연령과 연륜에서 담당하고 있는 지금의 사역은 초창기 30대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과거 한참 체력이 뒷받침되어주던 시기에는 동적인 사역들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과거의 동적인 사역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양도하고 그 대신 성숙함과 연륜을 바탕으로 한, 말씀사역, 영적인 방향제시 등, 현지 성도들이 담당하지 못하는 분야의 사역들에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연령과 연륜이 높아질수록 완숙함과 본이 되는 삶을 보여 주어,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견고함을 줄 수 있는 방어벽 내지는 피난처, 지팡이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선교지에서 많은 경험과 과정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그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들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따라서 너무 높은 연령대가 되어서 선교지에 나온다면, 여러 과정들과 시간들을 거친 후라야만 나올 수 있는 성숙함과 연륜을 바탕으로 한 사역을 담당하기에는 부족함과 어려움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마치는 말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비록 주님을 눈으로 뵌 적은 없지만,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따라서 우리 모두는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같다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부르심과 소명은 각각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런 원칙을 기반으로 현재 우리는 각각 처해진 상황 속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삶을 영위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90편의 권고의 말씀처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가 다시 한 번 필요하지는 않을런지요?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제한된 시간과 연령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과 연령의 특징 중 하나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지금의 연령에 맞는 삶의 방향과 위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니겠는지요? 지금도 많은 성도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방향, 위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옮겨야 될 필요를 느끼고 계시는 분들은 없으신지요? 자, 이제 올바른 삶의 방향과 위치, 자리를 찾아가기에 적합한 연령대인 20대에서 40대의 연령층에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혹, 너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