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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니콜스

13. 예수님을 누인 곳을 본 여인들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막15:47)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호수 서쪽 해안 작은 마을 출신이다. 주 예수님은 그녀를 괴롭히던 악한 일곱 영을 쫓아내셨다. 악한 영의 결박에서 풀려난 마리아는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고픈 마음으로 자신에게 허락된 새로운 자유를 주님 섬기는 일에 온전히 드렸다. 강인한 성품을 지닌 마리아는 부유했고,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마리아는 글로바의 아내(요 19:25)인데 그녀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였다. 어떤 성경 교사는 그녀의 아들들이 열두 사도 중에 있었다고 생각하며, 여기에서 나오는 글로바가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님을 뵈었던 글로바와 동일인물인 것으로 본다(눅 24:18).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글로바가 예수의 부친인 요셉의 형제였다고도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분과의 혈육 관계와 영적 관계의 가치에 대한 지침을 주셨다. 마가복음 3장 34절에서, 주님은 그분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마리아에게는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강한 결속력이었을 것이다.

이 두 명의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동생이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였던 살로메가 예수님의 시체를 어디에 두는지 보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를 어떻게 세마포에 쌌으며 어떻게 34킬로그램에 달하는 향품을 바르는지 지켜보았다. 니고데모는 재빨리 향품을 무덤으로 가져왔는데 아마 자기 장례식 때 쓰려고 준비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머리에 또 다른 천을 싼 후에 무거운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았다.

그 여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그들이 머물던 집에 돌아와 향품을 준비하고, 그 주(week)의 첫 번째 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로 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실 앞에서 겸손해진다. 왜냐하면,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명한 메시지들을 잊어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그 여인들이 주님을 사랑했던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도 그 여인들처럼 헌신의 선물로 주님을 존귀하게 대접하고 있는가?

그 여인들은 주 예수님을 어디에 어떻게 두는지 보았다. 요셉과 니고데모가 사용했던 무거운 천들과 돌문을 보았다. 이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음에 대한 증거이며 또한,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여기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우리 사랑의 반응으로 마땅히 드려야 할 기도가 있다.

내 사랑을 받으옵소서. 나의 주님.

내 사랑의 보화창고를 당신 발 앞에 쏟으리니.

나를 받으옵소서.

나는 영원히, 오직, 모두,

당신을 위한 것 되리니.

프란시스 해버갈(Frances Havergal)

14.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마 27:62-66)

우리는 예수님의 장사되심에 대한 증거들을 마태복음의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이유는 그들이 보았던 것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파의 일원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의 교리를 믿었지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은 원치 않았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다음 날 빌라도를 찾아갔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부활도 기대하지 않았다. 지도자들은 부활을 막고 싶어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을 지켜보며 너무나 큰 충격에 빠진 상태라 사람들을 속이거나 하는 일을 생각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내더라도 그들이 무엇을 얻겠는가? 빌라도는 무덤에 가보지 않았다. 빌라도가 지도자들에게 무덤을 지키라고 허락했을 때, 자신이 예수님을 처형하도록 선고한 것 때문에 불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의 술수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나 돌아가시고 나서도 항상 승리자로 보이는 것에 지쳐 있었다.

무덤을 떠나면서 종교 지도자들은 무거운 돌문을 보았다. 그들은 보초를 세워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게 밤새워 지키게 했다. 그들은 총독의 인장으로 돌문을 인봉했다. 거기에는 자연적인 장벽인 정치 지도자의 권세와 군병 보초들이 있었다. 게다가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는 과학적인 근거도 있었기에 부활에 대한 미신이 시작조차도 못 할 만큼 안전했다.

세월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음부의 권세’는 항상 장애물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음부의 권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고 생존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특히 20세기 들어 교회가 끔찍한 잔인함과 순교를 겪어왔지만, 교회는 여전히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죽음을 맞이한 통치자들은 향료를 발라서 부패 정도를 늦출 수 있을는지 몰라도 그들은 여전히 무덤 속에 있다. 공동묘지와 왕릉들은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도 지진이나 홍수를 만나면 완전히 손상될 수 있다. 보초들과 파수꾼들은, 사람의 영혼이 그 만드신 조물주께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은 몸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할 때에도 속사람이 주님께로 가도록 풀어 줄 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복음으로써 생명을 이 세상에 가져오시고 또한, 썩지 아니할 것(불멸)을 드러내셨다.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부활에 대한 찬송시를 통해서 그 사실을 잘 말해주었다.

돌문도, 보초도, 인봉도 헛되네.

그리스도께서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셨네.

사망이 그분의 부활을 헛되이 막네.

그리스도께서 낙원을 열어놓으셨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이끄신 곳으로 날아올라

우리의 높임을 받으신 머리를 따르리.

그분과 같이 되어 그분처럼 우리도 부활하리.

십자가도, 무덤도, 하늘도 우리 것이니.

15. 부활

하나님의 나라는 무덤 속에 갇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덤을 깨치고 나온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을 정의하는 한 가지 특징이다. 우리 믿음의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고,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우리는 경배할 무덤이 없다. 숭배할 성소도 없고, 순례 여행을 떠날 성지도 없다.

왕 되신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장사지냄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어떻게 무덤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빛의 왕이 사망의 어둠 속에 갇혀 있을 수 있겠는가? 어찌 생명의 왕이 무덤 속에 갇혀 계시겠는가? 그분이 사랑이라면, 그리고 사랑은 생명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면, 사랑의 왕께서 어찌 홀로 누워계실 수 있겠는가? 베드로는 교회가 탄생한 날에, 사도행전 2장 24절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시편 16:8-11의 말씀으로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뒷받침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1) 하나님의 나라는 돌문을 깨뜨린다. 세상 정부는 교회 건물을 파괴하고 기독교의 상징들을 부수며 성도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는 한, 교회도 살아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사람의 옷이 필요 없다.

왕 되신 주님은 무덤 속에 수의를 남겨놓으셨다. 수의는 이제 더는 쓸모없기에 버리신 것이다. 그러나 여인들이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예수님을 쌌던 천이 니고데모가 가져왔던 향품의 무게 때문에 푹 꺼져있는 것을 보았다. 그 천은 예수님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찢어지지 않았다. 머리를 쌌던 천은 풀리지 않은 채(예수님이 머리에서 그것을 풀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3)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권세자들의 인봉을 깨뜨린다. 하나님의 나라는 왕이신 주 예수님의 권세를 입고 있다.

4)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을 막으려고 애쓰는 보초들의 경비를 뚫는다. 일본에서 온 구로다 형제는 독일에서 살았기 때문에,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어 동부 유럽의 여러 집단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아직 공산 지배하의 알바니아를 방문했을 때, 알바니아 정부는 자기 나라에서 모든 종교의 흔적을 제거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알바니아는 공식적으로 무신론 정부였다. 어느 날 아침, 구로다 형제가 해변을 따라 한가롭게 산책하던 중, 한 남자를 여러 번 지나치게 되었는데 믿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 그 남자가 구로다 형제에게 인사하면서 혹시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암호였으며 그들은 읍내에서 하나님 나라 시민 몇 사람과 접촉하였다. 왕 되신 주님과 그의 나라는 알바니아에서도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여전히 그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음을 전해달라고 보초병들에게 뇌물을 줄 필요가 없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보초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밤중에 제자들이 와서 자기네가 자는 동안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여러분은 그들이 빌라도에게 보초병과 인봉을 요구하며 “저 유혹하던 자(예수)가 거짓을 퍼뜨리는 것을 막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진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예수님은 세상을 속이는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오직 진리를 말씀하신 분이셨다.

그는 살아나셨다!

번역: 이 화 령(남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