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주님께서 저를 주님 일에 부르시어 친히 이루신 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라는 말씀은 저를 복음에서 소외된 영혼들을 위해 살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복음의 불모지인 네팔로 오기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저는 전남의 조그마한 섬 ‘모도’ 라는 곳에서 주님의 선교로 부르시는 음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인가라고는 아홉 집밖에 없는 이 조그만 섬에도 이미 많은 이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러 다녀간 사실을 알고는 배를 기다리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한국에는 복음을 듣지 못해서 주님을 못 믿었노라 는 핑계를 댈 사람은 없겠구나! 그렇지만, 세계도처에는 아직도 전하는 자가 없어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곤 그 섬을 떠났고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계속 선교를 위해서 저를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충주에서 주님을 섬기던 어느 날 아침 신문 일 면에 실린 루완다의 종족분쟁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분쟁으로 하루아침에 이천 명이 넘는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신문을 움켜쥐고 “마귀는 이렇듯 영혼들을 전쟁과 기근과 질병으로 쓸어 넣고 있는데 누군가 그곳에서 지옥문을 막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요?”라며 주님께 울며 기도드렸습니다.

이것은 더 강한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충주모임에 온 네팔사람을 통해서 복음의 불모지인 그곳을 알았고 고통받으며 기도하던 끝에 시편 21편 2절, 3절 말씀을 받고 네팔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적인 주님 계획이었습니다. 저는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라는 말씀을 의지해서 네팔로 왔습니다. 사실 제게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네팔에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었습니다. 다만, 저 자신을 드려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주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날마다 힘쓰게 되었습니다. 제 계획은 없었지만, 주님의 계획은 정말 놀랍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언어 공부를 적어도 3년은 해야 복음을 전하든 무슨 일을 하든 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언어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첫 열매를 8개월 만에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리하여 생각보다 복음 전도가 일찍 시작되었고 네팔 입국 1년 6개월 만에 얻은 몇몇 영혼과 함께 떡을 떼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99년 1월에 시작된 카트만두 모임입니다.

‘영어도 못하는 우리를 어떻게 나라 밖 일에 쓰시겠는가?’라는 주님을 대신한 걱정도 기우였습니다. 영어가 유창하지 못함이 오히려 네팔어 공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네팔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된 모임을 섬기던 중 글을 모르는 성도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성경을 읽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러릭풀모임에서 운영하는 실로암 바사 켄드라 문맹퇴치 학급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빈 예배당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은 한국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소망학교에서 무료로 교실을 빌려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문맹퇴치를 위해 시작한 이 일이 복음 전하는 데 얼마나 좋은 계기가 되는지 모릅니다. 현재까지 100여 명의 주부가 글을 깨우쳤고 네 영혼이 모임에 연결되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인 수누왈 형제님은 이곳에서 글을 깨우쳐 성경을 읽고 매주 예배시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동참을 해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현재도 35명의 주부가 이곳에서 열심히 즐겁게 공부합니다. 최근에는 학생인 ‘니루’ 아주머니가 귀신 들려 고통당하고 있었는데 모임에 나오고 나서 귀신에게서 풀려나 즐겁게 모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003년 9월에는 카트만두에 출석하던 러릭풀지역 성도들을 중심으로 러릭풀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이곳으로 이사하여 지금까지 함께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러릭풀모임에는 주님께서 첫 열매인 허말 형제와 따씨 형제를 장로로 세우시고 제 차를 운전했던 히라까지 형제와 람 서런 형제 그리고 디네스 형제가 집사 일을 보고 있습니다. 모임이 개척되고 나서 카트만두와 러릭풀에 동시에 구원 역사가 일어나 모임 성도들이 계속 증가하였습니다. 그 후, 카트만두 모임을 통해 두 모임이 더 개척되어 현재는 4개 모임이 카트만두 계곡 안에 존재합니다.

카트만두 모임에는 네팔에 처음 왔을 때 우리 집에서 자매를 돕다 복음 듣고 구원받은 엄무리따 자매와 자매를 통해서 모임에 인도된 덜씽 형제가 결혼해 현재 모임 장로 일을 맡고 있습니다. 또 마체가웅 모임에는 덜씽형제의 인도로 모임에 연결된 빌 바둘 형제가 전심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헌신적으로 모임을 돌아보고 또한, 최근민 형제님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해서 모임들이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 새롭게 세워진 꺼번 모임이나 마체가웅 모임은 최 형제님이나 두루바 형제님이 보고를 잘하시리라 생각해 이 정도로 보고 드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러릭풀 모임이 개척되고 형제들과 함께 성도들을 섬기던 중 가난이 신앙생활에 많은 장애가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비가 없어서 모임에 오지 못하는 성도, 그리고 약 살 돈이 없는 성도를 보면서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하다가 헤브론 자활농장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주님께서 이 일에 아이디어를 주시고 필요한 자금도 놀라운 방법으로 공급하셨습니다. 그래서 현재 1,000평 농지에 농가 주택을 짓고 두 가정이 머물며 농사와 가축사육을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이들이 이제는 오히려 교회를 조금씩 돕고 있습니다. 또 매주 목요일 구역집회를 하면서 지역전도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러릭풀모임에 고아 두 명과 미감아 일곱 명을 보내셔서 이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 또한,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미감아 공동생활은 이 일을 오랫동안 하신 태국의 양병화 형제님 사역으로 형제님과 관련 있는 단체에서 후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양 형제님으로부터 이 일을 제안받고 좀 망설였지만, ‘복음전파 사명을 받은 우리’가 외면한다면 누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여자아이 두 명(한센병 환자)과 남자아이 다섯 명(미감아)을 아난형제와 인디라씨가 돌보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사랑스러운 딸들인 얼리나와 수실라는 모임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 받아 후원단체와 교회를 떠나게 되어 모임이 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이들을 사랑하시어 한국의 한 자매님 후원을 통해서 양육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일을 이루시던 중, 2008년 5월 28일에는 드디어 네팔의 힌두국법을 폐지 시키셨습니다. 네팔에 도착하고 나서 계속해서 성도들과 함께한 기도 응답이었기에 더욱더 기뻤습니다. 그날 우리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승리하게 하시는 주님을 힘차게 찬양하였습니다. 이제 네팔은 힌두왕국이 아닌 네팔 민주연합공화국입니다. 과거에는 왕이 힌두교의 한 신으로 군림하던 힌두왕국이었는데 이렇게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이 또한, 주님께서 예비하신 복이었습니다.

현재 러릭풀모임은 시외 지역에 관심을 두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지역은 카트만두 계곡의 3번째 시인 벅더풀입니다. 벅더풀의 빈민촌인 코떼솔로 매주 화요일마다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현재 네 분 자매님과 한 분 노형제님이 모임에 참석하고 매주 갖는 복음전도 모임에는 10~20명 영혼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구원받아 벅더뿔지역 모임을 이루는 기초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두 번째는 카투만두에서 동남쪽으로 560km 정도 떨어진 더먹지역입니다. 이곳은 교파교회 장로로 계시다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버드리 형제님의 고향으로 예전에는 30~40명이 교회로 모였는데 지금은 10여 명 만이 매주 토요일 아이야바리 형제님들의 인도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 번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아 고민하며 기도하는 지역입니다. 상주하며 복음 전할 일꾼이 없으니 영혼이 늘지 않아 이번 가을부터는 우리 가정이 오래 머물며 복음을 전하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당지역입니다. 이곳은 고우쩌런 형제의 고향으로 자기 집에서 일반교회 목사가 시작한 교회에 참석하다 메시지가 성경에 어긋남을 깨달아 자기가 복음을 전해 부모님을 비롯한 여섯 명에게 침례를 주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고우쩌런 형제는 모임에 있을 때에도 복음을 곧잘 전했지만, 아직 교회를 세우고 돌아볼 만한 영적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게다가 의료실습을 마치면 카트만두로 돌아올 예정이어서 이곳도 일꾼이 필요합니다. 러릭풀 모임도 아직 일꾼이 필요한 상태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교회가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네팔에 들어온 지 올해로 13년째인데 내년에는 두 번째 안식년을 가질 계획입니다. 그때까지 러릭풀 모임을 더욱 굳게 세우는 일에 주력하고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 전하고 모임 세우는 일을 하려 합니다. 또한, 전도자들을 일으키는 일에도 힘쓰려 합니다. 지금까지는 모임을 세우고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바빠서 전도자들을 일으키는 일에 매진하지 못하였습니다. 토요일에는 예배와 말씀, 주일에는 형제들 성경공부(마태복음), 수요일에는 자매성경공부(요한복음)와 수요기도와 간증집회, 월요일에는 쿠멀딸지역 구역집회, 화요일에는 오후 2시 빈민촌 복음집회와 저녁 6시 빠딴도까 전도집회, 때쪼 지역 구역집회, 목요일에는 농장지역 구역모임과 카트만두 지역 구역 모임, 금요일에는 호스텔 성경공부와 구라가이 가정 성경공부가 있습니다. 또한, 오전 시간은 성경공부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형제들과 모임 일을 나누어 하지만, 하루도 쉴 날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함께 전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식년을 가진 후에는 지금까지의 일을 형제들에게 많이 맡기고 전도하며 새로운 모임과 전도자들을 일으키는 일에 주력하려 합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후원하시길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네팔로 인도하시어 이와 같은 예비하신 복으로 복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묵묵히 기도하며 늘 힘을 주는 아내 이은숙 자매와 주님 안에서 잘 자라준 사랑하는 딸 지연과 아들 호연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많이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이들과 함께 라서 이겨 나갈 수 있었습니다. 늘 네팔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염려하시는 부모님과 모임 식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비록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계속해서 네팔 복음화에 동역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현 웅(네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