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끄시는 주님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캄보디아… 주님의 부르심 받고 고국을 등진 채 복음 들고 이 땅에 발 내디디신 부모님 따라 맺게 된 인연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1994년 여름 철없던 시골뜨기 초등학교 6학년 소녀에게는 지겨운 학교를 떠나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을 홀가분하게 떠나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떤 나라로 가는지, 무슨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지, 전혀 짐작도 못 한 채 눈물은커녕 뒤도 안 돌아보고 김포공항을 떠난 기억이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두 번째 고향이 되어버린 캄보디아… 이 공허한 땅에서 주님 살아계심을 맛보고 그분의 선하신 뜻을 따라 제 삶을 한 발자국씩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약할 때 강하신 주님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저는 캄보디아 땅을 처음 밟은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 합니다. 뜨거운 열기와 까만 얼굴들 그리고 그들이 쓰는 크메르어 모두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언제 적응해서 이 언어를 배우나 하는 부담감이 느껴졌고 한국을 떠날 때 가득 부풀었던 기대가 외로움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한국말 외에 아는 언어가 없었던 터라 일 년 동안 집에 갇혀 크메르어와 영어를 배우며 지냈던 그 시간은 정말 고독 그 자체였습니다. 공허하고 낮아졌던 그 시점을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성장하는 전환점이 되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7살 때 받았지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주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자라지 못하던 제 영안이 확 뜨이게 하셨습니다. 가정집회를 통해 구약부터 공부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큰 죄인임을 보여주시고 그에 반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가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을 더 알고픈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음성이 달기만 했고 주님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보낸 일 년 간의 고독한 생활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캄보디아 초등학교 2학년에 입학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외국인 학교는 엄두를 못 내고 한 달에 수업비가 5불이었던 현지 사립학교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말이 능통하지 않아 훨씬 낮은 학년으로 들어갔지만, 어린 동생들에 둘러싸여 나름대로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큰 누나나 언니쯤 되는 제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잘 놀아 준 순진한 아이들과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의 관심 덕택에 캄보디아 말을 빨리 익힐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다음해에는 어엿한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칠 즈음에 주님께서는 일정시대에 위안부로 캄보디아에 끌려오셨다가 50년을 홀로 보내고 매스컴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훈 할머니의 통역을 맡게 하셨습니다. 통역으로 3년 만에 고국 땅을 다시 밟기 전 주님께서는 잠언 3장 5절 말씀을 통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하시며 함께 하시는 주님만 의지하면 된다는 약속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훈 할머니의 통역을 하는 한 달간 수많은 기자와 세상의 많은 유명인사를 만나면서 무엇보다 주님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크고 참된 행복인지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명예, 부귀, 영화 다 있어도 주님이 없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불쌍한지를 느끼면서 주님의 자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크신 주님께서 저를 향한 계획을 세우시고 행하시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참으로 주님은 믿을 만한 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계획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허락하신 그 상황에서 믿고 순종하면 주님의 때에 필요한 문을 여시면서 한발자국씩 인도하신다는 사실도 깨닫게 하셨습니다.

부르시는 주님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캄보디아 학교에 다니며 죽어가는 어린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옆에서 복음을 통역하며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향한 부담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또한, 한의사 선생님들이 캄보디아 환자들을 진찰할 때 통역을 하며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사단의 권세 아래서 참 빛 되신 주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그들의 영적 필요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이 불쌍한 캄보디아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돕고 싶은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저를 캄보디아로 부르시고자 준비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느 날 말씀을 읽던 중 베드로전서 1장 18-19 말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하는 말씀과 고린도전서 6장20절 말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하신 말씀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 고귀하고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 부르심에 순종하여 내 인생을 아낌없이 드려야 하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이 주 예수.”

당시 캄보디아에서 10학년, 한국에서라면 고1인 18살인 2000년은 제 삶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제 또래들은 수능 준비로 한창 바쁠 때었습니다. 얼마 후면 대학을 가야 하는데 부정과 거짓이 난무하고 용납되는 학교생활이 지긋지긋했고 앞으로 2년을 더 다녀야 할 생각을 하니 암담했습니다. 인생을 낭비한다는 생각과 캄보디아의 열악한 교육환경에서의 대학 생활은 생각만으로도 앞이 캄캄했습니다. 왜 나는 하필이면 선교사 자녀로 태어나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원망도 했습니다. 주님은 과연 나를 사랑하시나 하는 의심도 들면서 삶에 대한 의욕은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 주님을 기억하지 않고 제 생각으로 가득 차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서 발버둥치며 괴로워하던 한심하고 부끄러운 제 모습이었습니다.

이렇듯 힘들어하고 있는데 뜻밖에 전두환 전 대통령님의 통역을 부탁받았습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 없이 거의 억지로 끌려갔습니다. 처음 통역으로 소개된 순간부터 주님께서는 은총을 내리사 남다른 관심을 받게 하셨고 바로 그날 꿈에도 생각 못 한 미국 유학 문까지 여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이라는 말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통역을 뛰어나게 잘한 것도 아니었고 세상적으로 내놓을 만한 것도 하나 없는 촌스러운 학생에 불과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주님은 뜻밖의 방법으로 주님 뜻을 이루시길 원하셨습니다. 주님꼐서는 힘들어하는 저를 나무라시고 채찍질하시는 게 아니라 얼어붙은 저의 마음을 사랑으로 녹이셨습니다. “유미야,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지 않느냐? 왜 나를 의심하였느냐?” 하고 물으실 때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투정했던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을 새롭게 주셨습니다.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하시니 두렴 없네.”

2000년 7월 드디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감사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주님과 함께하는 또 다른 모험 길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 못다 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캄보디아에 돌아와 주님을 섬겨야겠다는 포부로 가득 부풀어 있었습니다. 영적일 뿐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종으로 더욱 주님께 쓰임 받기에 준비된 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게도 Bob Jones Academy 고3으로 입학하여 제 나이에 맞게 졸업하면서 주님의 타이밍은 얼마나 정확하신지 다시 한번 주님의 섬세하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학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캄보디아에서 고1을 끝내지도 못한 상태에서 고 3으로 뛰어 짧은 영어로 따라가려니 남들보다 몇 배 노력해야만 했고 새로운 문화와 언어 장벽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캄보디아는 부모님 곁에서 나름대로 의지할 곳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주님밖에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제 맘 깊숙한 곳에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이셨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왔을 때 주님께서는 시편 103편 13-14절 말씀을 통해 위로하셨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주님께서 내 아버지시고, 늘 함께 하실 뿐 아니라 나의 약한 것까지 다 받아 주시며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데 내가 무엇이 부족하랴.’라고 생각하니 힘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이 부족한 저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기적들을 보이시면서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절절히 느끼게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고생하시는 귀한 한국 성도님들의 사랑을 통해서 받은 격려와 사랑을 비롯해 주님의 축복으로 연결된 인연들을 통해 주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캄보디아에 가면 이렇게 섬기라고 본을 보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7년 동안 부족함 없이 신실하게 영적, 육적, 지적, 감정적인 필요를 다 채워 주심을 경험하면서 저를 위해 몸까지 내어주셨을 뿐 아니라 항상 충만한 은혜를 더하시는 선하고 놀라우신 주님께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한 시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연약한 자를 붙드시고 포기치 않으심에 큰 감사를 올립니다.

비전을 심어주시는 주님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믿는 자여 어이 할꼬.”

캄보디아에 있을 때부터 무엇보다 어린이 사역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주님께서 캄보디아에서 할 일에 대하여 비전을 뚜렷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부모님께서 힘들게 복음을 전해도 불교가 생활화된 그들이 참 회개를 하고 변화 받아 믿음으로 사는 경지까지 이르기에는 얼마나 어려운지 보았습니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은 더 힘들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순수하고 마음 밭이 아직 부드러운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75년부터 시작된 내란은 4년 만에 거의 2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인재들은 거의 모두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현재 캄보디아는 20세 미만 젊은 층이 인구의 반 이상입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 캄보디아를 이끌어 나갈 이들에게 하루빨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안타까움과 부담감을 주셨습니다. 이들에게 참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정말 교육다운 교육을 통해 캄보디아 지도자로 자랄 기반을 마련함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캄보디아에 기독교 학교가 생긴다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목표를 가지고 Bob Jones University에서 초등교육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는 교육행정을 선택하여 학교 운영을 실제적으로 배울 기회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는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9장 37절에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이 캄보디아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주님 마음을 닮아, 주님께서 주신 힘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다 동원해 그들을 섬기고 주께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앞서 예비하시는 주님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오.”

2007년 대학원 졸업을 눈앞에 두고 주님의 인도 하심을 구하고 있을 때 주님 은혜로 캔자스에 계신 모임 장로 형제님께서 23년간 운영하신 성공적인 기독교 학교에서 일 년간 교사로 일하며 실제적인 경험을 할 좋은 기회와 만남을 주셨습니다. 그 동안 주님께서는 싱가포르에 계신 성도님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같은 비전을 가지고 기독교 학교를 세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시면서 미국을 떠나기 전부터 캄보디아에 세울 기독교 학교를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다양한 배움과 경험을 갖추신 형제, 자매님들을 통해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실 뿐 아니라 팀 사역으로 자연스럽게 이끄시는 모습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라는 말씀처럼 주님의 생각과 방법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8년만에 다시 캄보디아를 향해 또 다른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선교사 파송 문제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오버부루크 모임은 Bob Jones를 다니던 7년간 예배를 드렸던 모임이었는데 그곳에서 미국 성도님들의 사랑과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가족 같은 오버부르크 모임 성도님들께서는 모임 안에서 여러 해 동안 가까이 지켜보신 증인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선교사로 파송하시겠다는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미국 사람도 아닌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또한, 일 년간 캔자스에서 섬겼던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기쁘게 천거해 주셨습니다. 이 모두 주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 손길을 찬양합니다. 2008년 7월 드디어 8년 만에 그리웠던 한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 수부 모임과 조암수정 모임의 환송회와 기도집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격려가 되었고 성도님들의 기도와 적극적인 격려 또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계속 붙드시는 주님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캄보디아에서 다시 새로운 적응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미국에서의 풍요로움이 몸에 배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어릴 때와 달리 나이가 좀 들어 느끼는 캄보디아는 많이 다릅니다. 반갑지 않은 거미, 모기, 파리, 바퀴벌레, 더위와의 사소한 싸움은 두고라도 저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이 죽는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계속해서 자아가 깨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통해 주님을 더욱 닮아 감으로 주님의 빛을 더욱 환하게 나타내는 종이 되고 싶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고 싶습니다. 앞으로 많은 시련과 고난이 기다리겠지만,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따라가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하며 위로를 얻습니다. 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말씀대로 이 캄보디아 땅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보덴처럼 다 드렸다는 고백을 할 수 있길 원합니다. 아낌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김유미 자매(kimyoum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