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지상 대 명령입니다. 교회는 선교를 교회의 대 사명이요, 존재 목적이요, 가치로 인식하며 세계 선교에 동역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마28:1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이 말씀들은 교회와 모든 성도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지상 대 명령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선택이 아닌 순종영역입니다.

아직 오순절 성령 강림하시기 전 곧 교회가 시작되기 전에도 주님께서는 “천하 만민” “모든 족속” “땅 끝까지” 란 말씀으로 선교를 명하셨습니다. 선교가 후차적이거나 부수적이어선 안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곳곳에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개척하고 안정되기까지는 “땅 끝까지”란 주님의 명령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선교를 시기상조라며 미룬다면 한 마리 양을 찾아 험난한 고난 길을 마다치 않으시고, 찾은 양을 기뻐하시는 주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 무리에 거하기에 안전하고 평안하다. 지경 밖의 다른 잃어버린 양들은 내 알 바 아니다.’라는 이기적인 태도는 선교의 중요성과 급박함을 멸시하고 약화시킵니다. 이러한 비협조적인 마음과 태도는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구원받기 전, 잃어진 양으로 어둠과 예정된 멸망의 골짜기에서 헤매던 때를 기억해 봅시다. 그때 만약 나를 찾아오던 그 발걸음이 “이제 그만 찾자. 이젠 내실을 다지고 우리가 좀 더 편안하고 안정되면 찾아가자.”라고 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도 여전히 복음의 불모지로 남아 우리 또한, 참 영생의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영원히 멸망 당할 운명에 처해 있겠지요. 선교와 목회는 순서나 중요도를 논할 영역이 아니라 함께 힘쓰고 동시에 이루어야 할 중요한 사역입니다. 찾은 바 된 자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는 목자의 다급한 마음을 이해하고 같은 심정으로 ‘보내고’, ‘떠나고’, ‘동역’ 하는 성도여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교회는 그 시작과 함께 “땅 끝까지”를 염두에 두고 함께 기도하고 준비하고 또 협력하여 세계 선교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는 비록 복음의 불모지인 나라에서 이제 갓 시작된 교회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사의 소명

언어와 문화가 다른 “땅 끝까지” 나아가는 선교의 일꾼들은 다른 하나님의 일꾼들과 같이 분명한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에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13: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이방 영혼들에게 좋은 소식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아름다운 발인 선교 일꾼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명은 교회 가운데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에게 그들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 지역에 분명한 복음과 진리 그리고 그 위에 확립되어야 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중대한 사역을 효과적이고 충성스럽게 감당하리란 기대와 신뢰를 가지고 기쁨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자기에게 맡긴 책임과 사명을 은사와 역할을 따라 효과적이고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성령과 교회는 선교사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역할을 따라 사명과 책임을 맡겨 파송하고, 선교사들은 받은 은사와 분량에 맞게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그가 분명한 복음과 진리의 내용을 숙지하며 이를 이방 민족에게 전파할 수 있는 외국어 습득능력과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선교사역을 끝까지 감당할 충성심과 인내가 있는지, 그리고 성장하는 본을 보이는 인격을 갖추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선교지에 교회가 개척되어 사역이 확장되고 행정과 봉사 등 제반 업무를 동역할 후원 사역자가 필요해지면 합당한 후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는 은사를 따라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파송 교회는 선교지의 필요와 선교사 은사 분별을 천거와 파송에 반드시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만일 어느 성도가 선교의 소명을 받았노라 말한다고 파송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일이 됩니다. 그 소명이 주님께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그냥 개인의 소망인지와 은사가 일치하는지를 교제와 분별을 통해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선교사가 주님 사역을 잘 감당할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를 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다른 지역 교회에도 기도와 동역을 구하며 천거하고, 책임과 동역을 약속하고 파송해야 합니다. 선교사의 자질이나 소명은 교회가 파송 전에 신중히 점검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말씀 받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말릴 수 있느냐. 어쩔 수 없잖은가.”라며 확신도 없이 부담감을 느끼며 파송한다면, 이는 이미 갈등을 내포하게 되고 선교사나 파송 교회는 계속 사역의 열매를 확인하려 하고 자질을 논하면서 동역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한마음으로 확신과 기쁨으로 천거한 사람을 파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함께 책임지고 끝까지 협력해 맡은 사역을 효과적으로 열매 맺을 수 있게 온 힘을 다해 정진해야 합니다.

파송 교회의 천거

선교사는 복음이 필요한 지역으로 떠나는 교회의 발입니다. 따라서 선교사는 교회의 지체이고 선교는 공동사역으로 ‘선교사는 선교하고 교회는 선교사를 돕는다.’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끝까지 동역하고 모든 일을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파송 선교사가 주님 역사로 조그마한 사역의 열매라도 맺는다면 이는 선교사뿐 아니라 함께 한 우리 모두의 열매요 기쁨이요 영광과 면류관입니다.

파송 교회는 선교사 천거와 파송에 대해 다른 교회 앞에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한 지역 교회에서 천거한 선교사를 잘 알지 못해도 교회의 분별과 천거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여 파송을 기뻐하며 기도와 동역으로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재정적 책임과 협력

파송 교회는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필요한 재정 충당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지역 교회가 모든 필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세계 선교에 대한 사명과 책임을 가진 다른 교회와의 동역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필요를 인식하고 그 필요에 관심과 물질로 동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1)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한국 지역 교회의 동역을 통해 그 실례를 볼 수 있습니다.

파송 교회는 선교지의 경제 상황과 선교사 가족 수, 사역 규모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선교비를 파악합니다. 선교사 가정이 실제적인 교회 사역을 시작하기 전(언어습득 과정) 4인 가족 생활비가 이백 만원 정도 필요하다고 가정할 때 파송 교회가 그 중 50%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50%는 다른 교회가 동참할 기회로 남겨놓습니다. 하지만, 파송 선교사가 인지도가 낮아 나머지 50%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 나머지도 파송 교회가 감당해야 합니다. 이처럼 파송 교회는 파송 선교사의 재정 충당에 세심하고 적극적인 자세와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반면, 선교사는 선교지에서의 어떠한 어려움과 재정적 필요도 주님께만 의뢰해야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선교사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본을 좇아 하나님만 의뢰하면서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함을 배우고 그 마음을 감사와 평안으로 지켜야 합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7-19)

기도의 책임과 협력

파송 교회는 기도의 책임이 있습니다. 선교사를 위한 기도를 멈추거나 게을리함을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로 생각하는 강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전 교회가 선교 상황과 필요에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와 선교지 상황 그리고 영혼들의 필요와 반응 등 여러 정보를 긴밀하고 꾸준하게 파악해 교회 기도 모임이나 기도 정보지를 통해 나누며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다른 교회와 기도 제목을 나눔으로 하나님 은혜와 성도들의 합심된 기도를 통해 더욱 효과적인 하나님 역사가 흥왕하도록 해야 합니다.

격려의 책임과 협력

선교지에는 예기치 못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한 사단의 공격과 방해가 집중적이고 파괴적이고 다양하여 마치 지뢰밭을 걷는 듯할 때가 잦습니다. 그래서 격동하는 감정과 좌절, 낙심 등을 경험하고 영육 간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는 선교사도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성화과정에 있으며 격려와 이해와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육체와 성정을 가진 인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파송 교회는 선교사의 육체와 정서와 영적인 면과 삶의 제반 필요를 제때 살피고 채워서 책임감을 느끼고 세워야 합니다.

사역과 비전 공유와 협력

선교사와 파송 교회 간에는 부단한 하나님 나라 확장인 선교의 대 사명감 고취, 비전 공유와 전략 수립 그리고 성취를 향한 지속적인 협력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선교사는 파송 교회와 기도하고 동역하는 교회들에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알릴 책임이 있습니다. 그를 통해 기도하고 협력하는 성도님들은 선교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임을 더욱 확신하고 가치 있는 일에 동역한다는 인식과 삶의 목적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행14:26-28)

선교사와 파송 교회는 선교를 위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인덕원 교회와 선교사인 저는 선교의 비전 공유와 전략 수립을 위해 기도와 논의로 주님의 뜻과 지혜를 구하며 함께 결정해 나갑니다. 그리고 결정에 대해 서로 책임과 역할을 찾아가면서 가능한 한 모든 협력을 다합니다. 몽골 운드르항을 넘어 몽골 전역에 하나님 교회가 개척되고 중국 내몽골 그리고 중앙아시아 지역에 교회들이 개척되어야 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이 사역을 몽골 운드르항 교회와 동역하며 더욱 힘차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가정과 동역할 인덕원 교회 일꾼인 박수영 형제 가정을 천거하고 파송하기로 했습니다. 교회와 선교사의 긴밀한 협력과 동역으로 몽골 모임이 개척되었고 이제는 파송 선교사 간 동역을 넘어 세계 선교 영역으로 확장하여 곳곳에 승리와 정복의 깃발을 꽂기 원합니다.

선교뿐 아니라 환경과 상황이 허락되는 여러 영역에서 선교사와 파송 교회가 함께함을 우선합니다. 그렇다고 선교지 교회의 모든 상황을 파송 교회와 의논하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화상 통화를 이용하더라도 선교지 상황이나 영혼들의 상태 그리고 언어와 문화 등을 교회 장로들이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선교지 교회는 실제로 돌보는 선교사와 현지 인도자의 책임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지 인도자를 세우기 전에는 선교사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므로 교회의 결정권과 권위는 선교사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한 한 자주 현지 상황을 나누면서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여 실질적인 도움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선교사가 안식년을 맞아 본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파송 교회의 장로 모임에 참석해 파송 교회 상황을 알릴 뿐 아니라 그 동안의 사역 경험과 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선교사는 장로의 권위나 과정에 참여하거나 책임은 없고 다만 자유롭게 견해를 나누는 정도로 제한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안식년으로 본국에 왔을 때 인덕원 모임 장로 형제님들께서 먼저 장로 모임 참여를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논의 사항에 대한 저의 견해와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담 없이 제 의견을 나누었지만, 결정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는 떨어져 있으면서 생긴 이질감과 서먹함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고 파송 교회의 상황이나 사역 방향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섣부른 판단이나 오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고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장로 형제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교회와 동역에 대해 더 배웠습니다. 안식년 기간에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형제님들과의 교제였습니다.

선교 일꾼 발굴 협력

바울과 바나바가 이차 선교 여행을 떠나려 할 때 마가로 인해 선교사들이 나뉩니다. 그때 각 팀에 합류할 일꾼들이 지역 모임에서 발굴되었습니다(행 15: 36-41). 선교 현장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들은 어떠한 은사와 자질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지에 대한 안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를 택하고 안디옥 교회는 주의 은혜에 그들을 부탁하고 파송하였습니다. 이렇듯 선교사와 파송 교회는 선교 일꾼 발굴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협력할 수 있습니다.

다른 교회와의 선교 협력

파송 교회는 파송 선교사를 통한 선교뿐 아니라 아직 선교사가 없는 다른 교회와 동역하여 세계 선교의 중요한 영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른 교회의 파송 선교사를 후원하는 교회 또한, 선교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겁니다. 세계 선교는 모든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대 명령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시는 주님의 동역자로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주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하심을 가장 귀한 상급과 영광으로 여깁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영생의 떡과 물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그 역할들을 다하지 못하거나 부족해 여전히 주리고 목마른 상태로 사망의 골짜기로 향하는 영혼이 많습니다. 그리스도 의의 옷을 거저 받아 하나님 영광에 참여하는 복된 소식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여전히 죄와 사망에 거한 영혼들의 언어가 2,500개 이상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 받아 ‘보내고’ ‘나아가는’ 교회와 선교사들의 책임과 사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교회가 복음에서 소외된 영혼들을 주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는 사랑을 선교로 실천하기 원하십니다(마25:31-46).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의 모든 선행과 수고와 동역을 기억하시며 반드시 보상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정광원(몽골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