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덕문

윌버 톰슨 맥카피(1917.9.15-2009.1.10)

윌버 톰슨 맥카피 선교사는 1917년 9월 15일, 캔사스 주 가넷에서 출생해, 2009년 1월 10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하늘에 있는 본향으로 돌아가 주님의 존전에 들어갔습니다.

맥카피 선교사는 아내 헬레나 피터스 맥카피 여사(매니토바 주 몰덴 시에 거주), 딸 린다(알래스카 주 빅 레이크 시 거주), 형자(미네소타 주 세인트 폴 시 거주), 미자(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 시 거주), 3명의 손자, 7명의 손녀, 그리고 7명의 증손자손녀 등 미국과 한국에 여러 명의 수양 아들과 그들에게서 난 손자손녀를 두었습니다. 그는 부모님, 첫 번째 부인 도로시, 딸 쟈넷, 형 기포드, 그리고 여동생 에델 메이 다음으로 소천했습니다.

 맥카피 선교사는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두 명의 아내와 일생을 함께 했습니다. 그는 1937년 도로시 벨레 웨이트와 결혼했습니다. 도로시의 소천 후, 1976년 매니토바 주 윙클러에서 헬레나 피터스와 재혼하여, 그 뒤로 32년간 함께 주님을 섬겼습니다.

맥카피는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생의 시간들을 즐겼습니다. 미국에서만 적어도 10개의 주에서 살았고, 캐나다에선 2개의 도에서, 그리고 3개국에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풋볼 스타였고, 나중엔 풋볼 심판까지 했었습니다. 지역 로데오 경기에서 야생마를 탔고, 아칸소 주 오츠악에서는 아름다운 리조트를 짓고 운영했으며, 목장을 경영하면서 성공적인 농작 정착 사업을 펼쳤습니다. 그는 30대에 벌써 은퇴해도 될 만큼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37세 되던 해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러고는 선교사역에 전심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콜로라도와 알래스카에서의 고아원 사역, 전쟁으로 피폐된 한국에서의 고아원 사역, 미국내 원주민들 사역, 그리고 캐나다 원주민들 사역 등 여러 일들을 했습니다. 맥카피의 유머 감각과 추진력, 결코 식을 줄 모르는 열정, 창의적인 정신, 사람에 대한 사랑과 범사에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 등이 이 모든 풍성한 결실을 맺는 삶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맥카피는 한국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20년의 시간을 바쳤습니다. 농업 분야에서 토양 검사, 비옥화 작업, 목축 도입 과정에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의학과 교육 분야에도 큰 공헌을 한 것이 인정되어 한국정부가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영예를 받았습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국민훈장(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되며, 국민훈장 무궁화장·국민훈장 모란장·국민훈장 동백장·국민훈장 목련장·국민훈장 석류장 등 5개 등급이 있음-역자주)을 수여했다.

맥카피 생애 최고의 열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성공이란, 자신이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는 말씀이 그의 삶에 대한 합당한 결론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