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죄사함과 함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나의 삶 속에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인격적인 관계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분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친밀한 사귐과 깊은 교제 속에서 그분에 의해, 그분을 위하여, 그분 때문에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사람은 육신을 입었으나 영적 존재입니다. 육체를 가진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성령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고, 사귈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교제함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한 만큼, 그리스도를 만난 만큼 변화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을 한 번 만나고 마는 게 아닙니다. 한 번 만났기에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 뵙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 분이시며, 하나님께서도 교제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보다는 다른 대상에게 더 관심을 두고 삽니다. 그러므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원받고 나서도 변화 없이 계속 과거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단지, 죄사함만으로 끝납니다. 구원은 죄사함을 깨닫는 것이 아나라 죄사함을 받았기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격으로 교제를 나누고, 경험으로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는 중에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잘 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지키며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창28:15)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습니다. 그때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라는 고백을 합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모습은 아닐런지요?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함께 계시고 어디에나 임재하시지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며 사귐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이미 몇 천 년 전 기록된 말씀 책이지만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믿을 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가 없을 때는 우리 생각이나 경험으로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 임재를 모른 채 육신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유대교인 중, 하나님을 가장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이 바리새파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네가 성경을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의롭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항상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고...”라며 자기 의를 내세웠지만,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성경을 많이 알고 다른 사람보다 열심과 행위가 있었지만 그들 삶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삶을 통한 감동과 도전을 주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을 주님께서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니라.”(마13:14~15)

그들은 구약성경을 통해 자기 조상의 패역한 모습을 보면서 분개했을 뿐, 자신의 악함과 패역함은 몰랐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볼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대할 뿐, 믿음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귐이 없었고 깊은 교제 또한,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 이스라엘 백성과 똑 같았습니다.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비추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가르치기를 좋아했지만, 자기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으로 자기 잘못이나 악함과 패역함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통회하며 회개하고 악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중심을 지적하셨습니다.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오늘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세상 즐거움이 좋아서 주님께 고침 받기 원치 않는 건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가르치기 전에 나를 살피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봐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가져 거룩한 영향을 받기 위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에게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귐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으나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섬겼습니다. 구제할 때도 시장에서 나팔을 불어 사람을 모아 놓고 했고, 골방에서 기도하기보다 시장이나 공회에서 기도했고, 자기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이 결국, 하나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사역이 아니라 영광을 훼파하는 사역을 하였고, 사람을 살리는 사역이 아닌 죽이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이 없었기에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하나님 뜻을 몰랐습니다.

흙으로 빚어졌고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 음성을 듣고 사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나눌 때 그 모습을 뵙고 닮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때 주님 뜻을 분별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 능력을 덧입고 주님 일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사역을 하기 전에 먼저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사역에만 집중하다 보면 우리 영이 메마르고 육체는 곤비해집니다. 하나님 사역은 너무도 귀하고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는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묵상하는 사귐과 하나님을 위한 사역은 다른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 하나님과의 사귐보다 우선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보다 우선하는 사역은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사귐을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십시오. 행복한 삶으로 연결됩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그분과 함께 친밀한 사귐을 나누십시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부족함을 채우십니다.

할렐루야~!

박건신(원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