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주님이 좋은 수양회 장소를 확보하시고 어김없이 전국에 흩어져 있던 사랑하는 자매님들을 불러 모아 2박 3일의 귀한 만남과 교제를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기혼 자매수양회를 사모하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1967년 5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고, 1987년 8월, 진주교회에서 거듭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그 당시 약 400명 정도 모이는 장로교회예배당 바로 옆집이었습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찬송소리, 기도소리를 듣고 자라고 초등4학년 까지 주일학교를 다녔지만 불신가정의 저와 성도가정 자녀를 차별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마음 문을 닫은 채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동갑내기 사촌을 따라 초등학교 5, 6학년 시절에 열심히 절을 다녔습니다. 어릴 때부터 종교심이 많았던 저는 절대자인 신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복을 받고 싶었습니다. 제 가족은 위로 언니 두 명과 남동생 두 명이 있고 아버지께서는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공부하는 건 낭비고 아들들에게 아낌없이 투자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셨고 어머니는 딸이라도 실력이 되며 대학교까지 보내어 당당한 사회인으로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위로 딸 셋을 둔 부모님들은 학비가 나갈 때면 이견으로 말미암아 항상 말다툼을 하셨는데 그때마다 저는 ‘난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났을까? 신이 계시다면 내게 복을 내려주시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으며 절에 가면 불상 앞에 엎드려 절하며 복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1학년 때, 대학 4학년이던 큰언니가 다시 우리집 옆에 있는 장로교회에 나가면서 저도 다시 교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자녀로서 축복을 받아 행복한 삶 누리기를 갈망했습니다. 다시 시작한 교회생활은 제게 희망을 주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더욱더 열심을 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새벽기도집회도 매일 빠짐없이 참석했고 대학교 1학년 때는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복음을 외치며 전도도 했습니다. 저는 전도상도 타고 교회학생회 임원도 하고 대학교에서는 기독학생동아리에서 학생회장도 하면서 나의 의로운 행위와 열심으로 예수 믿는 자는 확실하게 예수 믿는 자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거룩한 하나님 자녀의 반열에서 떨어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니던 그 장로교회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가장 강조하신 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제일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설교시간과 집회는 장로교회 다닐 때부터 거의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가는 버스에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큰 성경책을 읽고 계시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분은 연세가 많은 목사님이나 장로님이시구나. 가는 동안 이 분께 좋은 교훈도 받고 말씀도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분이 1984년에 진주교회를 개척해서 사역을 하시던 심동식형제님(현재 필리핀 일로일로 선교사)이었습니다. 당시는 형제님께서 염색을 하지 않으셔서 새치가 많았습니다. 다시 진주로 돌아가는 막차에 형제님도 타고 계셨는데 제게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는 물음에 저는 구원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후 1년쯤 지난 어느 날 마산 동부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던 인척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던 중, 길에서 마산교회 복음 집회 전단지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 계획은 그날 진주로 와서 대학부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주님께서는 마산교회의 복음집회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집회 강사님으로 오신 심동식형제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제 이름을 부르셨는데 ‘나 같은 학생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까?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이 참 많으시구나.’라는 생각에 감동했습니다. 저는 장로교회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고 그 교회 목사님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설교를 잘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복음 집회 첫날 주제가 죽음이었는데 내일 다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의 빛이 제 영혼에 비추인 사흘 간 복음집회 후에 저는 제 신앙을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저는 두 달 후인 1987년 8월에 지리산 뱀사골에서 열린 호남연합수양회에서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후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 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3:6)라는 말씀을 따라 장로교회를 떠나 진주모임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끼치며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세 여인을 소개하고자합니다. 첫 번째 분은 제 어머니이신 서두이 성도님(5년전 구원받음), 두 번째 분은 진주교회에서 사역을 내조하시던 한명화자매님, 세 번째 분은 진주교회 정수진 자매님입니다. 한명화 자매님은 말보다 행함으로 본을 보이는 분이셨는데 2000년 3월 6일 45세로 주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안식하고 계십니다. 자매님은 심성이 선하고 정직하시며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받기보다 항상 즐거이 주시고, 기도에 항상 깨어 합심하여 기도하는 훈련을 해 주셨습니다. 또한, 제가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책망도 아낌없이 하셨는데 그럴 때면 힘들고 아팠지만, 그 권면은 저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게 했고 모난 제 인격을 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분을 떠나보내고 저는 신앙의 깊은 슬럼프에 빠져 침륜에 빠져드는 저 자신을 보며 도피성을 찾은 것이 2004년 기혼자매 수양회였습니다. 1994년 이후 꼭 10년 만에 찾은 2004년 기혼자매 수양회를 통해 저는 신기한 주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강단 말씀과 찬양은 온통 위로와 격려에 관한 메시지였고 노래였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같은 방 자매님들을 통해서도 저를 위로하셨고 제 상황을 잘 아시는 앞선 자매님들을 통하여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다음해인 2005년 기혼 자매수양회에는 가지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까지도 제 영혼은 소성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기에 그런 나약한 모습으로 자매수양회에 가면 다른 분들께 폐만 끼치고 힘 빼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위 자매님들의 권유로 참석한 2005년 기혼수양회에서도 놀랍게도 주님의 위로와 격려는 넘쳐 제 영혼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이 두 말씀은 제 영혼을 일깨웠고 그 후로는 해마다 제 상태와는 상관없이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또 한 분은 지난해 11월 30일 41살 나이로 주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안식하고 있는 정수진 자매님입니다. 정수진 자매님은 29살에 구원받고 6개월 후에 하상호 형제와 결혼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편지는 아내를 주님나라로 보내고 남편이 2008년 12월 2일 발인식 때 읽은 사랑의 이별편지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정수진 자매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이별 편지

여보! 나와 당신이 만난 지 13년,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 맺어진 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의 반쪽을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기막힌 일이 생겼습니다.

이제야 부부의 사랑이 무엇인지, 당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기 시작했는데 나의 사랑을 미처 주기도 전에 이렇게 떠나 보내야 하다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내가 경찰학교에 있을 때 성경이를 낳고 보일러 기름이 없어그 차가운 방에서 수증기로 방을 데워 추위를 견뎌냈던 당신이었죠.

그렇게 고생을 시켰는데...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무심한 나였습니다. 너무나도 따뜻했던 당신의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자기 몸 돌보기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는 못 먹더라도 다른 사람을 먼저 챙겨주는 당신이었습니다. 그런 이타심은 주님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을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입니다.

당신 손을 놓고 싶지 않지만, 보내긴 싫지만 당신에겐 가장 사랑하는 주님 품이 더 좋기에 이제 당신을 주님 품으로 보내려 합니다.

이제 그 곳에서 그동안 다하지 못한 주님과의 교제를 마음껏 가지시고 당신이 그토록 사모하던 예배도 한없이 드리고 목청껏 찬양도 드리세요. 그리고 혹 시간이 나면 이 지상에 남아있는 사천식구들, 진주식구들 그리고 성도들을 한 번씩 돌아봐주세요.

당신에겐 그곳이 너무 좋겠지만, 당신 없는 세상을 살아야할 나와 아이들에겐 당신 빈자리가 너무 클 것 같아요.

나에게 남겨진 우리 아이들만 아니면 이 시간 나도 당신을 따라 그곳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을 위해 지금은 열심히 아이들을 돌볼게요. 그리고 언젠가 주님께서 부르시면 당신이 계신 그곳에서 못다한 사랑을 나눌게요. 그때까지 힘들겠지만 참을게요. 보름만 지나면 당신의 마흔 한 번째 생일인데... 이번 주에 몸이 좋아지면 퇴원해서 근사하게 생일축하 해주려 했는데이렇게 빨리 가버리면 어떡해요. 하지만, 이번 생일상은 주님께 양보할게요. 주님께서 더 좋은 생일잔치를 차려주실 겁니다. 여보! 이제 떠나세요. 이젠 주님 품에서 편히 쉬세요. 못난 나를 만나서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여보 사랑해요 잘가요. 내 사랑, 잘가요.

2008년 12월 2일 발인날 아침에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불꽃처럼 살다간

정수진자매께 남편 하상호 올림-

정수진 자매님은 제 올케입니다. 그러나 그 자매님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4년 동안 투병 생활 중에도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항상 주님을 신뢰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과 성도들과 이웃을 힘닿는 대로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매가 병을 이기고 2009년 자매수양회에 함께 하기를 간절히 소망했지만 주님 계획은 다른 가 봅니다. 훌륭한 믿음의 두 분 자매님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저를 가르치셨고 주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 땅 위에서 함께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동안 서로 아끼며 사랑해야함을 알게 해 주셨답니다.

올해도 주님께서 야마모리 카즈히로 형제님을 통하여 “자매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살려서”란 주제로 5시간 동안 귀한 말씀을 부어주셨습니다. 부엌에서, 접수대에서, 놀이방에서, 찬양지도와 반주로, 진행과 기획으로, 차량지원, 통역, 음향과 멀티미디어로, 또한 기도와 물질로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사와 재능을 따라 기혼 자매님들을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섬기셨던 귀하신 성도님들께 우리주님께서 풍성하고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끝으로 해마다 전국에서 기꺼이 아내를 보내어 주시는 남편된 형제님들에게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다시오심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진주에서

하은미 자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