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가라!”

이 말씀은 인천 남동공단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주님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제자로 삼고 침례를 베풀고 함께 말씀을 배우며 한 떡과 한 잔에 참여하여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한 지 육 년이 지날 무렵 주께서 저희 가정에 하신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이 일을 계속하면 어떻겠냐고 여쭈어 봤지만, 주님께서는 계속 명령의 첫 동사 “가라!”로 재촉하셨습니다. “마흔아홉의 나이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가서 언제 언어를 익히고 일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입이 둔합니다.” 하며 주저하고 있을 때에도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4:12) “이제 가라!”라고 재차 재촉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정을 보내시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에도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니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worship, 예배드리리니 -표준새번역, NIV, NRS)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라고 말씀하시며 한국에서 구원받고 돌아가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A국 형제자매들과 그곳에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혼들을 인도하여 주님의 자녀 삼아 함께 예배드리라고 명하시고 이를 증거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 년 삼 개월 전 A국 S지역의 겨울


오직 일 년 치 집세와 약간의 식비를 가지고 배에서 내린 저희 가족의 A 국에서의 삶은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은 채로 시작되었지만, 그곳에 사업차 먼저 가 계셨던 K형님과 한국에서 함께 했던 A국 형제자매님들의 함께 하심을 통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가라!”라는 말씀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라는 약속의 신실하심을 증명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6년 동안 집회 중에 A국 경찰과 보안 관련자들이 세 번 찾아왔었습니다. 그때마다 함께하신 주님께서 보호해 주셨고, 신실하신 주님께서 육 년간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채워주셨습니다. 처음 저희 집에서 시작하여 안전문제로 평균 일 년에 한 번 정도 집회 장소를 옮겨 다녔지만, S 지역 여러 곳에서 오늘까지 피로 사신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예배받고 계십니다.

“백 투 예루살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

처음 A국에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흩어진 채 예배를 못 드리고 있던 형제자매들을 모아 예배드리고 함께 말씀을 배울 때부터 이 꿈을 함께 하여 A국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지막 선교사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A국 형제들과 함께 마음이 급했습니다. W시는 두 명의 형제로 교회가 시작되었고 Y시는 세 명의 형제들로 시작하였기에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면 수년 안에 많은 가정교회가 S 지역 곳곳에 생겨나리라 생각했고 형제들도 힘차게 나아갔었습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마음만 앞선 지역에서는 개척 후 다시 철수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의욕적으로 고향으로 이전하여 개척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영적으로 퇴보하고 교회에서 멀어져 버린 지체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L시의 경우는 남편 고향에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한 자매의 열망과 기도가 L시 출신 다른 형제들에게 도전이 되어 W시의 50% 정도 월급에도 기꺼이 감사하며 개척에 동참한 때도 있습니다.

B지구 농촌에서는 고향의 부모와 친척에 대한 부담을 가진 신혼부부 형제자매가 귀향하여 부부가 만찬 예배를 드리고 주변에 거듭나지 않은 정부 교회에 있는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육 년째인 지난해에는 중국 현지 일꾼 형제들의 자원 요청에 따라 20여 명의 성도가 직장을 그만두고 제1회 A국 S지역 단기성도 합숙훈련과정을 개설하여 16주간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로 삼아야 하기에 형제들의 고향을 찾아가서 2주간 개인전도 훈련과 기간 중 매주 2회의 전도 실전 훈련을 하여 열매와 자신감을 얻어 침례를 베풀었고,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또한, 가르치고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숙식하며 섬기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S 지역 교회 일꾼들이 영적 성숙과 교회들의 실제적인 자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주에는 졸업을 이틀 앞두고 A국 경찰이 급습하는 시험을 받았지만, 훈련에 참가했던 형제자매들의 용기와 지혜로 이 시험을 잘 통과 하여 오히려 더욱 굳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오히려 조사 나왔던 경찰 간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은혜도 입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저희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치유와 회복과 쉼을 가지도록 기회를 주셨고 서쪽을 향한 두 번째 임무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귀국하는 A국 형제자매들의 문제점과 제안

한국 여러 교회에서 구원받고 귀국한 A국 형제자매들에 대한 기대는 빌립에게 복음을 듣고 거듭난 아프리카 내시처럼 자생하여 먼 훗날 한 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바꿀 그릇으로 쓰임 받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온실 밖에 내어 놓은 묘목처럼 대부분 뿌리 내리지 못하고 흘러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언어를 비롯한 여러 장벽으로 인해 잘 양육 받지 못하고 예배마저 예배자가 아닌 예배의 관람객으로 있다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혹 귀국하여 주변에 몸된 교회가 있다 해도 환경에 휩쓸리어 떠내려가기 쉽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 오직 자기네를 돌보아 주던 교회 성도들과만 친교를 한 경우도 귀국하고 나서 다른 한국 일꾼 혹은 현지 일꾼과의 관계 형성이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돌봄을 받던 교회 일꾼들이 들어와 돌봐주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도 역시 신앙이 정상적으로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음을 봅니다.

또한, 비공개로 가정에서 모여야 하는 환경에서 공개 전도 집회를 할 수 없기에 각자 개인 전도위주로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데 실상 대부분이 한 번도 개인전도 훈련을 받아 보지 못했고 전도 경험이 없는 상태로 의욕만 앞선 채 가족과 주변에 복음을 전하다가 대부분 좌절하는 모습을 봅니다. 더군다나 삼자 교인들 혹은 이단들과의 변론에서 자신감을 잃고 나면 더욱 위축되어버립니다.

한국에 있을 때

첫째로 스스로 만찬 예배를 드리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떡과 잔에 참예함을 삶의 최우선으로 놓고 모국어로 입을 벌려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쁨과 유익을 경험한 성도는 어디에 있어도 한 떡에 참여하여서 한 몸 된 교회와 교제 나누기를 사모하게 됩니다. 대륙에 흩어진 저들을 모으는 최선의 비결은 만찬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인천 연수교회에서 구원받고, 양육 받으며 한국에서 모국어로 예배드리던 성도가 S지역 교회들의 개척 성도입니다. 예배드릴 교회가 그곳에 없으니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로 그들의 고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 파송 일꾼들과 한국에 있을 때부터 미리 친분을 맺고 교제할 수 있도록 하여 그들이 고향을 미리 방문하고 가족들과 유대 관계를 맺거나 귀국하여 계속 교제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들의 정확한 고향 주소와 가족들의 전화번호를 확보하여 나중에라도 잘 돌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많은 경우 귀국 후, 영적 상태가 나빠지면 핸드폰 번호를 바꾸어 버려 연결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로 가능한 개인전도 훈련과 양육을 해서 귀국 후 건강하게 뿌리 내리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넷째로 A국 영혼을 돌보는 한국 교회들과 A국에 나가 있는 일꾼들과 A국 선교에 관심 있는 성도들이 주기적으로 경험과 비전을 공유하는 모임이 생기게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마라나타!”

A국 M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