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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니콜스(Don Nicholls)

16. 부활의 날 - 조용한 날!

옛 창조는 대폭발과 함께 시작했다고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누가 그것을 시작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누가 그렇게 잘 작동하게 하였는지도 그들은 밝힐 수 없다. 한 외과의사가 물체를 15만 배로 확대하는 전자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세포를 연구하다가 세포 하나는 그 자체로 완벽하게 체계화된 세계임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그가 하나님을 창조자로 믿을 만한 토대가 되었다. 어떻게 한 번의 폭발로 지적인 설계가 이루어진단 말인가? 어떻게 수많은 세포들이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70년 동안 역할을 할 하나의 몸으로 결합할 수 있겠는가?

반면, 새 창조는 약하게 시작되었다! 사실 지진이 일어났다. 그것은 갈보리에서 창조주의 죽음 때문에 일어났던 지진에 대한 여진이었다. 부활 시에 있었던 지진 때문에 창조주의 무덤이 열리고 그분께서 무덤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이미 살아나셨고, 이미 무덤 밖에 나와 계셨다. 이 사실이 예루살렘 거리마다 전해지도록 어떠한 선포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추종자들 앞에 앞장서서 승리의 행진을 한 것도 아니었다. 에베소서 4장 7-8절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그분의 승리의 행진은 나중에 그분의 승천 시에 일어났다.

아마도 그날이 그렇게 조용했던 이유는 왕이 전 세계에 속한 분이시기 때문일 것이다. 공적인 발표를 하기에 적절한 장소를 선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예루살렘? 로마? 또는 시안?(그 당시에는 중국의 수도가 장안이었다.)

그것은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 가운데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말씀하심과도 같다. 그분은 오늘날에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분은 막달라 마리아에게도 부드럽게 속삭이셨고,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에게, 시몬 베드로에게,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 그리고 날이 저물 때에 열한 사도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17. 막달라 마리아 - 내가 주를 보았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두었다가” (막 16: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 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요 20:1-2)

요한복음 20장 11-18절에는 마리아가 주 예수님과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1)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았다. - 그녀는 그가 힘센 동산 지기인 줄로 알았다. 그것은 유령이 아니었다.

2)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셨고, 마리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사용하셨다.

3) 예수님은 마리아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마리아를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형태로 그 이름을 부르셨다.

4)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제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주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메시지였다.

a. 예수님께서 당신의 하나님, 당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b.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올라갈 것이다. - 무덤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c.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관계를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있는 형제들로 새롭게 하셨다.

d.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자녀와 예배자로 회복시키셨다.

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늘로 돌아가시게 되면, 당신의 백성들과 더욱 ‘가까워지리라.’는 것을 마리아로 하여금 알게 하셨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옛 창조의 끝, 예수님의 부활과 새 창조의 축복,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결속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이 그 놀라운 구절 속에 함께 담겨 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낙원으로 데려가셨던 강도에게도 해당되고, 열린 무덤의 동산에 있던 마리아에게도 해당되며,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 20:18)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막 16:11)

세상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마리아와 제자들 그리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변했다. 그리스도께서 새 창조를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18.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 - 그들은 ‘예수님 누인 곳을 보았다.’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막 16:4-8)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돌이 굴려진 것을 발견했을 때,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한 천사가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하며 그들을 위로하려고 했다. 그렇듯 미소 지으며 하는 천사의 말도 여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일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히 놀라 떨며 동산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에 마태는 예수님을 도중에 만났으며, 여인들은 그의 발아래 엎드려 경배했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죽은 사람은 살아나지 못하지만, 그분은 살아나셨다. 이렇듯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유일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경배하라!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자녀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날 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추수의 첫 열매이셨다. 그러므로 그를 경배하라!

물론 그 여인들은 나중에야 이러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가 우리에게 더 명확하게 나타났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딤후1:9-10) 그러므로 그분을 경배하라!

마가는 천사가 주님께 받은 메시지를 여인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한다. 그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도망쳤던 제자들을 위한 메시지였으며, 대제사장들에게 재판받으실 때 그분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위한 개인적인 메시지였다. 나는 여인들이 이 말을 전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궁금하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항상 자기 백성들에게 진실한 분이라는 사실에 감탄했을까? 또한,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말씀을 지키시는 데 신실하시며,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데 신실한 분이심을 발견하고 감동했을까? 그러므로 그를 경배하라!

처음에는 천사가 그다음에는 주님께서 여인들을 만나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주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주님께서는 예전에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훈련하셨던 선교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사용하시리라는 뜻을 확증하실 것이다. 또한, 제자들에게 모든 시대, 모든 나라의 소망이 되는 지상 대 명령을 주실 것이다. 그 메시지가 우리에게도 메아리친다. 그러므로 그를 경배하라!

19. 시몬 베드로 -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 베드로는 자기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여러 가지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베드로가 배운 대부분 교훈은 실패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으며 넘어질 때 큰 위안이 된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께서 겉옷을 벗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교만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시몬 베드로와 요한은 유월절을 위한 다락방을 준비했었다. 그들은 객실 준비는 잘했지만, 손님들의 발을 씻는 것 같은 천한 일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보며 자신의 교만이 더럽게 느껴졌다. 그는 깨끗해지기 위한 목욕이 필요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너는 이미 목욕하였으므로 깨끗하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은 네 발에서 교만을 씻어내는 일이다.”

그 후 저녁에 베드로는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충성심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강하다고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성전을 지키는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갔을 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달아났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우리에게 전투에서 이길 힘을 주시려고 살아계신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왔을 때, 제자들은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라고 여쭙는데, 베드로는 허락도 없이 검을 사용하여 말고(Malchus)를 공격했다. 하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그를 책망하셨고 그리스도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도 보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실제로 베드로는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해치려 하지 않고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의 온유함을 보여야 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는 곳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사형 집행자들과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하시는지 지켜보았다. 주 예수님께서는 욕을 당하실 때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을 때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하셨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사람들이 주님을 안나스의 집에서 가야바의 집으로 끌고 가는 광경을 바라보았을 때 마주친 주님의 눈은 베드로에게 많은 말씀을 하고 계셨다. 베드로는 십자가까지 따라갔지만, 자기가 주님을 부인한 일에 대해 용서를 빌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갈보리를 떠나와서 비참한 주말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죄를 속히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베드로가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자기를 버리지 않으셨고 여전히 자기를 사용하시리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음을 알 뿐이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말씀대로 했다.

우리는 이 만남이 누가복음 22장 31-34절에서 베드로와 모든 제자를 위해 예수님께서 드리셨던 기도에 대한 응답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이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나 여전히 좋은 주인이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가실 때에도 당신을 따르던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습관을 가지고 가셨다. 그리고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에 거기에서도 우리를 온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다. 그는 우리가 넘어질 때 회복시키시며, 고치시고, 사용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실족한 형제자매들을 돕는 데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다. 시몬 베드로가 온전한 회복을 받기까지의 여러 단계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야만 했다.

신자 대부분은 자신의 약함과 죄악이 드러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미가 선지자가 그렸던 하나님의 초상화가 여전히 절대적인 진리라는 위안을 베드로의 경험으로부터 확실하게 누릴 수 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용서하시며)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 미 7: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