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디옥 교회의 탄생과 영적 특성

○ 스데반의 순교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을 통해 세워진 최초의 이방인 교회(행 11:9~23)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란을 통하여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헬라인들에게 주 예수를 전파했을 때, 주의 손이 함께 하여 수다한 사람이 주께 돌아온 역사로 말미암아 탄생한 교회이다.

이때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 이들을 격려하여 교회의 기초를 세웠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 사건으로 흩어진 복음증거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들은 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수다한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되었다.

○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교회(행11:23)

안디옥 교회를 처음 방문한 바나바는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의 기쁨과 환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고 기뻐하며 순종하는 그들의 믿음에서 그리고 서로 돌아보는 형제 우애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야 말로 안디옥 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 주님의 쓰임을 받게 된 원동력이며 우리가 모두 사모하고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할 믿음의 간증이 되어야 한다(요 1:14, 16, 17).

○ 신령한 인도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교회(행 11:24, 25)

안디옥 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 주님의 쓰임을 받게 된 데는 그들 가운데 신령한 인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은 자신들의 삶의 본과 가르침을 통해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성령의 감동함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다 전했을 것이다. 특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행11:24)로서 믿음과 인격에 있어서 믿는 자의 본이 되고 있었다.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잘 가르침을 받은 교회였다는 증거가 다음의 세 가지로 나타난다.

- 첫째는 바나바와 바울이 일 년간 안디옥 성도들에게 가르친 결과 ‘큰 무리가 주께 더해졌고’ 또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의 말씀 사역은 성경 지식을 가르치거나 교리를 주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삶을 바꿔놓는 것이었다. 그들은 삶에서 그리스도를 연상케 하는 어떤 구별된 특성들을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을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행 11:26). 그들은 삶 전체가 온통 그리스도로 물들어 있었기에 그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계획하며 실천하는 등 삶 전체의 동기와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였기 때문이었다.

- 둘째는 이방인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어려움이 임했을 때 부조를 보낸 일인데 이는 국경과 민족적 감정을 초월한 형제 우애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과 원만한 관계 가운데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 안에 살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 셋째는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지시하심을 볼 때 그들이 주를 섬겨 금식하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분부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했을 것이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된 데는 훌륭한 인도자들에 의해 잘 배운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 인종과 문화적 차별을 극복한 교회(행13:1)

안디옥 교회는 인종차별과 문화적 편견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구현하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의 인도자들을 보면 바나바는 레위인이었고,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흑인이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알려졌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은 왕족이거나 귀족 출신이었다. 그리고 사울은 바리새파 출신의 정통 유대인이었다. 이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문화적 차별과 흑인과 셈족과의 인종적 차별뿐 아니라 왕족과 평민의 사회적 차별을 극복한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 말씀처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교회였다.

○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교회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주를 섬기며 기도하며 금식할 때에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따로 세우라는 음성을 주셨다. 이것은 순종하기 쉬운 명령이 아니었는데, 이는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개척 당시부터 핵심적인 지도자였고, 사울은 가장 영적으로 잠재력이 큰 젊은 일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한다는 것은 교회의 체제와 지도력에 큰 변화를 가져옴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그 음성에 순종했을 때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 하나님 나라의 선교에 열정을 품고 기도하는 교회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주님의 뜻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던 안디옥 교회와 그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신 성령님을 주목하게 된다. 안디옥 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하며 기도하던 일이 아마도 하나님 나라의 선교에 대한 주님의 뜻을 알기 원했을 것이다.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게 된 것은 주님께 큰 기쁨이 되어 즉각적인 기도 응답을 받게 되었다. 이에 성령님께서는 선교에 대한 그의 뜻을 보이셨고 교회는 성령님의 뜻을 따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여 보냈다. 안디옥 교회는 자기 지역 교회의 핵심 지도자와 가장 잠재력이 큰 젊은 일꾼을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위해 기꺼이 내어줄 만큼 이타적이었고 세계 선교에 대한 열정을 품은 교회였다.

2. 세계 선교의 문을 연 안디옥 교회

안디옥교회는 세계 선교의 문을 연 위대한 교회이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세워지고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은 가장 성경적인 교회였다. 신령한 인도자들의 섬김을 통해 교회의 기초가 든든히 세워진 교회로 예배, 교육, 구제, 금식과 기도, 선교에 있어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함을 받는 성도들로 충만해 있었다. 어느 날 성령님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을 때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안수하고 두 사람을 파송했다. 마침내 바나바와 바울이 교회의 파송을 받고 세계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첫째, 선교는 성령이 지시하는 매우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이다. 물론 선교가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닐지라도 교회의 참다운 존재 가치는 선교에 있다. 선교의 목적은 이방인의 구원이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요, 성령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이며,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선교란 많은 사역 중의 한 특별한 사역이 아니라, 교회에서 행해지는 교육, 구제, 기도와 금식 등의 모든 교회 활동이 모든 민족을 제자 삼기 위한 선교에 집중되어야 한다.

둘째, 바나바와 바울이 단독적으로 선교지에 가지 않고 교회의 안수와 파송을 받았다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울은 항상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사역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파송 교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선교사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을 통해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

셋째,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돈과는 무관하였음을 볼 수 있다. 안디옥 교회는 누가복음 10장의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라는 선교 원리를 순수하게 적용했을 것이다. 이 말은 전쟁이 여호와께 속하였듯이 선교도 하나님께 속했다는 뜻이다. 물론 안디옥 교회는 전 교인이 최선을 다해서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며 물질적으로 필요를 돕는 일에 책임을 다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선교에 돈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고 선교의 주인은 주님이라는 원리는 결코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안정될 때 선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교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선교하는 교회가 바른 목적을 가진 성령이 인도하시는 건강한 교회라는 교훈을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보이는 지상 교회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영원히 존재한다. 안디옥 교회는 지상에서 사라졌지만, 모든 교회 안에 이 안디옥 교회가 자리 잡고 살아있는 것이다. 큰 교회는 건물의 크기나 성도 수에 상관없이 세계를 품고 세계를 자기의 교구로 삼는 교회이다. 선교에 헌신한 교회가 가장 큰 교회이다.

김 주 달(서울북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