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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니콜스(Don Nicholls)

9. 십자가형을 담당한 백부장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막 15:39)

로마 군대의 낮은 계급을 가진 병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거친 사람들이어서, 때로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압제하기도 했다.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은 로마 군인들만이 아니었다. 대만의 운난(Yunnan) 성에 있었던 우리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중국 여자의 남편도 힘센 남자였는데, 그는 극심한 갑상선종을 앓고 있었다. 그는 절반은 군인이었고, 절반은 강도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우리 병원에 있는 외국 어린이들에게는 다정하게 대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로마 군대의 장교들은 대부분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이었고, 사람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공정했고, 또 임무를 수행하는데 존경받을 만 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열렬히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가버나움 주둔군을 맡은 백부장은 유대인에게 훌륭한 회당을 지어주었다.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는 우상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자 했던 경건한 사람이었다. 예수님과 및 두 강도의 십자가 처형을 맡았던 부대를 지휘한 그 백부장도 존경을 받을 만한 또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봐왔다. 그는 아마도 임무를 수행하면서 많은 죄수들이 이 잔인한 처형으로 고통 받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죽음을 맞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다 이루었다’ 고 외치는 승리의 외침, 그리고 성취의 외침소리를 들었다. 그는 예수님이 머리를 숙이시고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절망에 찬, 겁먹은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 조용히 자신의 생명을 넘겨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처형의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신뢰하는 아들로서 숨을 거두셨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셨는지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 죽음은 내가 이전에 보아왔던 죽음과는 다르다.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확신에 찬 말을 하도록 했을까? 나의 대답을 들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나는 그가 후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간증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1) 예수님은 욕을 받으실 때에도 위협하거나 보복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원수를 용서하셨다.

2) 예수님은 고통을 줄이기 위한 약을 받지 않으시고 고통을 그대로 감당하셨다.

3) 예수님은 자기를 믿은 강도를 격려하셨고, 희망과 평안을 주셨다. 그는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왕이셨고, 또한 자기를 믿은 강도의 운명조차도 다스리실 수 있는 왕이셨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생의 삶과 죽음 뿐 아니라 영생까지도 책임지신다. (이 세상 나라의 왕인)가이사는 결코 흉내낼 수 없다!

4)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에 대해 매우 사려가 깊으셨고, 자신이 죽은 후에 그녀를 돌보도록 준비하셨다.

5) 온 땅을 덮은 어둠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었다. 자연도 그분께 복종하고 있었다!

6) 예수님은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전쟁에서 이긴 승리자로서 죽으셨다.

7) 예수님은 받으신 고난으로 약해지셨지만,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예수님에게서 생명을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다.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이 얼마나 능력으로 충만한 약해지심인가!

예수님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의로운 분이셨다. 그분의 몸가짐은 왕과 같았다. 그분의 통치영역은 이생에서 무덤 너머에까지 미친다. 그분은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 그의 인격에는 힘이 있었고, 신성으로 충만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진실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혹 그 백부장은 ‘나는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10.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막 15:40-41)

이 여인들은 모두 주님께 은혜나 친절을 입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님의 공생애 3년 동안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다. 이 여인들은 주님을 따르고 의지했으며 결코 안락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을 함께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돈과 소유와 재능으로 주님의 필요를 채웠으며, 그분의 이동식 훈련 학교의 학생들을 도왔다(눅 8:1-3 참조).

 이들은 소심함 때문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갈보리에서 자신의 집으로 모심으로써, 아들이 이러한 죽음을 맞는 것을 보는 슬픔에 휩싸이지 않도록 했다.

예수님의 친구들은 놀랄 만큼 갑작스럽게 주님이 체포되고, 재판을 받으며,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일을 겪게 되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깊은 헌신과 충성심에 대해 그들을 존중할 수 있다. 그들은 주님이 배신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며,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이 그분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는 일은 틀림없이 고통스러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우는 일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았을까?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거기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어 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 너무도 처참하여 나의 마음 괴롭지만,

눈물로 가득한 내 눈에 두 가지 기이한 일이 보입니다.

바로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랑과 나의 무가치함.

이 두 가지 기이함이 십자가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클레페인(E. Cleph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