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사에서 유래된 말 중에 모순(矛盾)이란 말이 있다. 과거 군웅이 난립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창과 방패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옛날 초나라에 무기를 만들어 파는 상인이 있었는데 그 상인은 창을 들어 보이며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고 또 방패를 들어 보이며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라고 선전했다. 그러자 구경꾼 중 한 노인이 “당신이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그 창으로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다고 선전하는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질문하자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모순이란 단어는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을 막는 방패’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듯이 이치가 서로 어긋남을 뜻하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 중에 자가당착, 이율배반, 표리부동, 위선 등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들은 위선이나 표리부동한 행동에 대해서는 정죄하고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자기 삶의 모순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인간은 많은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 다만, 모순된 삶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에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모순된 삶은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 역사와 함께 인간 삶 속에 뿌리 깊이 숨겨진 죄의 형태이다.

인간은 왜 모순된 삶을 사는 것일까? 이는 인간이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이기심은 모든 상황에 대한 판단을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해석함으로 모순을 일으킨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12장을 보면 다윗왕은 충실한 부하의 아내를 취하여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까지 전쟁터에서 죽도록 살인 교사하는 악행을 범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태연히 사건을 덮어두었다. 그러나 어떤 큰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몹시 가난한 이웃의 양을 빼앗아 잡았다는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에 다윗이 크게 노하며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이다.”라고 외친다. 다윗왕은 자신의 큰 죄는 간과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하여 정죄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전형적인 인간의 모순된 삶을 바로 보여준다.

또 마태복음 18장에는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용서하지 않는 내용이 있다. 자신의 허물과 죄는 용서받기 간절히 원하면서 정작 다른 사람의 사소한 죄는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모습 속에서 인간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이율배반적이며 모순된 행동인가?

고전소설에 나오는 욕심쟁이 놀부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라는 비상식적이고 모순된 논리로 탐욕을 부린다. 이기심은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큰 모순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타적인 마음을 소유하지 않으면 결코 모순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모순된 삶의 또 한 원인은 교만 때문이다. 교만은 상대보다 자기를 늘 낫게 여기는 높아진 마음으로 모든 상황을 안하무인격[眼下無人格]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대체로 상대를 과소평가하고 자기를 과대평가한다. 그러므로 ‘남이 나서면 교만이고 내가 나서면 자신감’ ‘남이 타협하면 야합이고 내가 타협하면 양보’ ‘남이 변화하면 변절이고 내가 변화하면 발전’이라는 등 모순된 논리로 남은 비하하고 자신은 호도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같은 상황임에도 상대를 무시하고 불신하며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반면, 자신은 영웅시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 연약과 허물을 깨닫지 못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교만한 사람의 모순을 지적하신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교만해지면 자기 허물보다 다른 사람의 허물이 눈에 쉽게 들어와 크게 보이며 이에 대해 지적하거나 판단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교훈하신다.

누가복음 18장에서 보면 바리새인은 자기는 세리와 비교하여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지만, 세리는 하나님 앞에 감히 머리를 들 수 없는 큰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 말씀을 통해 다른 사람은 정죄하고 오히려 자기 의를 드러내는 바리새인의 교만을 지적하신다. 겸손을 위장한 바리새인의 교만한 태도를 책망하시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결국 자기모순에 스스로 빠져들게 된다. 예수님께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소유하지 않으면 결코 모순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이 모순된 삶을 사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삶에 진리가 없을 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 기준이 막연하고 모호해 해석에 따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되어 모순을 일으킨다. 인간은 대체로 자기에게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엄격하다. 그러므로 같은 상황에서도 입장에 따라 다른 주장을 하는 모순을 낳게 된다. 이는 참된 삶의 기준인 진리가 없기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이치를 말한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만, 진리는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오직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며 인간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해야 모순된 삶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에 대한 군중재판에서 사람들은 간음한 여인을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논리대로 율법을 범하지 않은 자 곧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발견하고 뒤로 물러가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 죄를 간과한 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하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진리 되신 주님 앞에 서면 자신의 모순된 삶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인생이 불행한 이유는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아도 극복할 능력이 없어서이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순된 삶을 깨닫고 극복할 수 있게 이미 진리의 말씀과 성령님을 은혜로 주셨다. 오직 진리의 말씀만이 우리 삶 속에 숨어 있는 모순을 드러내며 진리의 성령만이 그 모순을 극복할 능력을 주신다.

참된 신앙은 인간의 모순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로 시작되는 것이며 영적성장 또한, 삶의 모순을 깨닫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성숙의 척도는 자기 삶 속에 숨은 모순을 얼마만큼이나 깨닫고 극복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오직 진리의 말씀과 성령 충만함으로 모순된 삶을 극복하고 영적 성숙에 이르기를 추구해야 한다.

박우상(대전대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