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니콜스(Don Nicholls)

3. 두 명의 강도

“때가 제 삼시(오전 9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막15:25-27)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39-43)

강도 두 명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들은 유죄를 선고받은 범죄자였다. 아마도 그들의 처형은 예수님을 죽어 마땅한 범죄자로 공식화하고자 서둘러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 죄수들의 죄명을 죄 패에 써서 십자가에 붙여 놓았는데, 이를 통해 모든 행인은 죄수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는 범죄에는 반드시 공의, 심판, 처형이 따름을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700년 전에 죄를 지고 가는 사람(예수님)이 범죄자 중 하나로 취급받게 되리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자기 죄 때문이 아니었다. 또한, 이사야서 53장 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 예수님의 찔림이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는 말은 우리가 수없이 법의 경계를 넘어갔으며, 올바른 행동의 울타리를 무너뜨린 것에 대한 형벌 담당하심을 가리킨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 예수님의 상함이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는 말은 법이 있어도 우리는 법을 깨뜨리면서까지 원하는 길로 갔기에 그 죗값을 지불하심을 가리킨다.

이 두 강도는 죄 된 삶을 선택했으며 이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한 강도가 가운데 십자가에 달린 사람에게 계속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는 아마 사회를 향한 분노의 표출이자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려는 행동이었으며 어쩌면 약간은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며, 하나님 없이, 소망 없이, 영생 없이, 죽음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또 다른 강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붙은 유대인의 왕이란 팻말과 고통당하심을 바라보면서 아마도 수 없이“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란 예수님의 기도를 들었을 것이다. ‘용서한다고?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나까지도 용서할 수 있을까?’

구원받은 강도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할 수 있었다.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이렇게 노래한다.

마침내 나는 굴복했네, 굴복했네.

말씀하시는 피에 귀를 기울여라.

내 모든 죄와 함께 나를 맡긴다.

나를 대속하시는 하나님께!

말씀하시는 피는 그 구원받은 강도에게 무어라 했는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강도는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세상 떠나실 때 하늘 문을 여시고, 천국과 생명으로 인도하심을 보았다. 이제 영생을 얻어 새롭게 태어난 강도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친히 인도하셨다!

4. 지나가는 사람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막 15:29-30)

유월절에 수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와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혼잡했다. 사람들은 유월절에 쓸 물건을 나르고,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가져오느라 바쁜 중에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십자가형은 매우 끔찍한 광경이었고 모두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남자 세 명이 십자가에 달렸었는데 그들이 죽어 마땅한 사람이란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은 ‘그는 죽음을 자초했다!’ 또는 ‘그럴 줄 알았다.’라는 몸짓이다. 흔히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다른 개들도 따라 짖는 걸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욕했다. 만약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러는 나사렛 예수에 대해 들은 바 있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소문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는 항상 엄청난 말을 했었다. 46년이 걸렸지만, 아직도 완공 못 한 성전을 허물면 삼 일 만에 다시 짓겠다니... 소문(rumor)은 종종 잘못 전달될 수 있다. 소문을 전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헤롯 대왕이 짓기 시작한 웅장한 성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하나님 집인 당신 육체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몰랐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뜻으로 말씀하셨다.

‘내 몸을 헐라, 그러나 삼 일 만에 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영원히 지속될 새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주장은 어리석게 보였다. 자기 자신도 구원 못 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한단 말인가? 왜 그가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리라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은 참된 유월절을 깨닫지 못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밤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에 발랐다. 이 어린양은 그 집 장자 대신 죽었다. ‘예수님의 날(유월절)’을 앞두고 있었던 그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죄의 노예가 된 인간 대신 돌아가실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 또한, 삼일 후에 그들 조상이 죽음을 통과한 것처럼 홍해를 건너 새로운 삶으로 부활했다는 의미를 놓쳐 버렸다. 그렇게 그들은 구원자가 무기력하게 죽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삼 일 후, 예수님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할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그는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를 내어주셨다.

혹시 당신 또한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이 아닌가?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가 행인에게 이 찬송시를 썼다.

지나가는 너희 모든 행인아!

예수께 가까이 나아오라.

예수의 죽음이 너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그는 너의 대속물과 화평이시며,

너의 보증이 되신다.

그가 당한 것과 같은 슬픔이 어디 있는지 와서 보라.

그가 너를 대신해 돌아가심을 지켜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