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 상 영 선교사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의 족속에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겔 33:7)

전국에 계신 형제자매님들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된 박상영 형제가 인사드립니다.

저는 광주 중부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평범한 형제입니다. 제가 지난 13년간 A국을 오가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허락하신 주님의 놀라운 손길에 다시 한 번 지면을 통해서 감사드리며 저를 위해서 쉼 없이 기도해 주시고 어려운 가운데에도 아낌없이 선교 사역을 후원하신 광주 중부 교회와 여러 교회 형제자매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17세가 되던 1988년 겨울방학 때 대전 내동 모임에서 놀라우신 주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청소년 신분으로 술과 담배를 즐기고 오토바이를 타며 세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 구원 받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저는 잠시 피었다 지는 들풀처럼 사라졌을 것입니다. 당시에도 선배, 친구, 동생들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많이 떠났습니다. 제 고향은 전라남도 섬마을 진도입니다. 부모님은 철저한 불교신자이면서 미신을 깊이 따르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가정에도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끊임없이 내려주셨습니다. 먼저, 작은 아버지이신 박복준 형제님을 통하여 끊임없이 복음이 전해졌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던 시골까지 서울과 대전 여러 지역 성도님들이 찾아와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아버지 되시는 박병준, 어머니 하정심, 작은누나 박상지, 작은형 박상진이 구원받았고 저 또한 대전내동 교회 복음 집회에 초대되어 구원받았습니다.

그 후 저는 늘 두 가지 목표를 향해 살고 싶었습니다. 첫째, 돈을 열심히 벌어 선교사나 사역자들을 섬기고 둘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제 젊음을 드리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2006년 어느 날, A국에서 선교하시는 나 형제님께서 A국 선교지 방문을 제의하셨습니다. 그러나 즐거움보다는 근심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린 얼마 후 새벽 기도시간에 형제님께서 다시 전화를 하셨습니다. 평안하게 기도하던 저는 “형제님, 기쁨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광주광산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에 들어서자 제 눈앞에는 수많은 옷과 가방이 있었습니다. A국인들은 한국과 수교 후 한국 제품을 선호해 전도용으로 A국 성도와 구도자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마침 이 일에 힘도 좋고 건강한 제가 적격이었습니다. 비록 짐꾼 역할이었지만 제 마음은 정말 기뻤습니다. A국말도 모르고 돈도 없지만, 건강한 몸으로 형제님 일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고 이렇게 처음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996, 97년 두 차례 A국 전도여행을 다녀온 후, 제 마음에는 무언지 모를 답답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A국 인구는 세계 제일입니다. 14억 인구 중 94% 이상이 한족이며 그 외 55개 소수 민족을 합쳐도 6%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족은 약 200만 명에 불과합니다. 알 수 없는 마음의 답답함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저 14억 영혼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나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일꾼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청년으로 A국어도 한마디 못하는데 누가 나를 선교사로 인정하고 후원할까?’

저는 A국어를 열심히 배워서 A국에서 선교하시는 형제님들의 통역이나 물건을 운반하는 작은 일에라도 사용되길 기도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98년 5월 28일, 광주 중부 교회에서 은혜를 입게 하시어 A국 유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언어, 문화, 기질이 전혀 다른 거대한 땅, 수많은 인종과 영혼이 있는 A국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에는 형제님들을 따라왔지만 이제는 오직 저 혼자였습니다.

그 무렵 IMF 사태로 한국 돈의 가치는 바닥이었고 생활은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저는 “주님, 제게 언어의 은사를 주시고 물질을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필요를 채우셔서 구원받을 영혼들을 허락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은 처음으로 두 영혼을 허락하셔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들은 영어를 배우겠다며 영어권 선교사에게로 떠나가 버렸고 저는 마음이 몹시 어려웠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영혼들을 쉽게 만나고 그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라고 기도드리자, 갑자기 A국에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많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한국어를 배우러 찾아왔습니다. 저는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학생들을 통해 여러 지하 교회를 알게 되었고 찾아가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A국의 지하교회란 정부가 인정하는 삼자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교회를 말하지만, 이미 교파에 물 든 지 수십 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복음만 전하면 다 구원받으리라 생각했지만, A국인이 완전히 회심하고 돌아오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30년간 대만 극동방송을 청취하던 영혼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고 그 후, 1주일 만에 4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하교회의 음악, 체육, 교장선생님이 구원받고 이들을 통해 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많은 성도는 아니지만, 주님을 사랑하며 성도를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며 주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직 A국에는 미전도 지역이 여럿 있습니다. 이곳에 교회 일꾼들이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주님의 사랑에 못 이겨 A국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가 정말 즐겁고, 감사함으로 복음을 증거하는데 김철회 형제님(안산 동부 교회)께서 전화로 대뜸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매를 소개해 주면 결혼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전화로 결혼 결정을 묻는 게 갑작스러웠지만, 제 마음은 평안했고 주님 일을 하시는 형제님을 통해 배우자가 될 자매를 소개받음이 제가 보고 결정하는 것보다 좋겠다는 확신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말씀과 아브라함의 종을 통해 이삭의 아내를 만나게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예, 주님의 뜻으로 알고 어떤 자매를 소개하셔도 감사함으로 받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 5일에 서울 서대문 교회의 석정희 자매와 첫 만남을 가졌고, 그 다음날에는 자매 또한, 결혼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8월 16일에 결혼식을 했습니다.

저는 A국생활이 13년째입니다. 자매는 이제 선교의 첫발을 저와 함께 내디뎌야 합니다. 저희 가정이 A국의 모든 영혼을 구원할 순 없지만, 주님께서 준비하신 한 영혼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우리 살아생전에 가장 가치 있는 주 안에서의 생활일 것입니다. 기도에 동역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기도 제목

- A국 GD성에 교회가 세워지기를(이 지역은 95%가 불교입니다. GD성은 제 2의 홍콩으로 경제 중심지이며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이 구원받은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해 주세요.)

- 자매의 언어 공부를 위해

- 제 장기 비자 취득을 위해

- 신변 안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