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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돈 니콜스

번역: 김화령(남원교회)

1. 주님이 장사 되셨다

 고린도전서 15:3-4에서,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붙들어야 하는 진리를 소개한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메시지는 바로 이 사실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에 나타난 모든 믿는 자가 붙들어야 할 진리를 나열해보면 이와 같다.

1) 그리스도

2)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3) 그분께서 장사 되셨다.

4) 그분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5) 성경 - 그리스도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의 출처

 우리는 보통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부활로 신속하게 넘어간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의 장사 됨은 우리 믿음에서 매우 중요하다.

A. 예수님은 돌아가셨기에 장사 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장사 되시기 위해서는, 십자가형을 담당한 백부장이 총독에게 그분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돌아가셨는지 아니면, 단지 기절하셨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주는 분명한 답변이다.

B.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한 준비나 돌아가신 예수님을 정한 세마포에 싸서 무덤 속에 뉘인 방식 모두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었다. 제 삼일에 그들은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무덤에 갔지만,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

C. 예수님의 무덤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시신을 훔쳐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주장하지 못하도록 가능한 한 굳게 지켰다. 이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가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D. 그러나 제 삼일에 무덤이 열리고 무덤이 비게 되자, 설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여러 차례 본 후에야 그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E. 이제 열리고 비어 있는 무덤은 우리 믿음을 돕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분명하게 외치고 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2. 아리마대 사람 요셉

“이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막 15:42-46)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겐 집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아리마대에 있는 시골집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에 있었다. 예루살렘 집의 작은 정원 안에는 자기를 위해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이 있었는데, 이 무덤은 그의 재산 중 가장 값진 것이었다.

요셉은 유대인의 문화와 관련한 일을 처리하는 의회였던 산헤드린의 유력한 공회원이었다. 그는 한밤중에 진행되었던 예수님을 재판하는 자리에서 가결에 찬성하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 그는 비밀스럽게 주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 되신 주님께서 체포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이제 돌아가셨다. 이 모든 일은 15시간 만에 일어났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볼 때, 요셉이 예수님을 위해 일어나기엔 좋은 때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가는 요셉이 담대히 빌라도에게 가서, 개인적으로 장사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가져가게 해달라는 허락을 받았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는 유대인의 법을 잘 아는 사람인지라 예수님께서 살인, 반역, 또는 테러를 저지른 죄인이 아니므로 시신을 가져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요셉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내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기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해가 지고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장사를 지내는데에는 겨우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왕은 죽었다. 그러나 요셉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적대감에 대한 두려움, 실패한 리더를 따르는 것에 대한 당혹감, 그리고 조롱하는 자들의 비웃음을 넉넉히 이기고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을 끝까지 지켰다. 그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과 백부장에게서 예수님의 사망 증명서를 받기 위해 아주 신속히 움직였다. 그는 재빨리 시신을 감쌀 새 세마포를 샀다. 산헤드린의 최고 의원이었던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랐다. 요셉은 자기의 새 무덤을 예수님께 드렸는데, 그것은 지극히 값진 선물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무덤 문에 큰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았다.

이 모든 일은 너무도 빨리 진행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는 무덤 입구를 막고 나서야 잠시 멈춘 채, 이 모든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그것은 과연 실패했는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그의 믿음,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는가? 그는 자신의 왕을 잃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님께 충성스런 사랑을 드릴 때, 그것은 굴하지 않는 아름다운 헌신이다. 요셉은 자기가 가진 최고의 선물을 왕에게 드렸다! 하지만 그는 보상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기슭까지 삼일 길을 여행하는 아브라함에게서 이와 똑같은 충성된 사랑을 발견한다. 아브라함은 종들을 거기에 남겨두고, 손에는 칼을 든 채, 이삭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하나님은 믿음 안에서 더욱 강해진 아브라함의 사랑을 보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후손에 대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었다.

욥도 마찬가지이다. 욥은 그의 가축과 재산, 가족 그리고 건강을 잃었지만, 하나님께 대한 확신은 잃지 않았다.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까지 했다. 그의 세 친구는 숨긴 죄를 자백하라고 충고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멸시했다. 심지어 젊은이들도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속할 분이시며, 언젠가 이 세상이 지나가고 하나님과 만날 때, 자기의 믿음과 충성이 증명되리란 사실을 알았기에 그처럼 처절한 비극을 이겨냈다.

우리는 모압 여인 룻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인 시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헌신은 정말 감동적이다. 보아스는 다른 사람들은 놓쳤을지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오미를 사랑하는 룻의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룻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러 왔다. 그녀의 마음에 쏟아져, 시어머니와 보아스 그리고 그녀가 만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흘러내렸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믿음의 영웅들 이야기를 공부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 인물 대부분이 주님께 대한 충성심을 평가하기 위한 한두 가지 두드러진 사건만이 기록된 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전 생애를 살았지만, 기록된 것은 그들의 ‘최고 정점에서의 경험’이었다.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다른 전승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믿을만한 근거가 없다. 여기에 한때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시인하기를 두려워했으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단호히 자기 믿음을 드러냈던 한 남자의 행동이 있다. 이는 그의 삶을 펼쳐 놓고 볼 때 위대한 최고 정점이었을 것이다.

호주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인생 최고의 정점을 그 사람의 울루루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그의 태산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그 사람이 후지산과 같이 솟았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사랑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면,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이것은 찰스 웨슬리가 그런 정점에서 드린 기도이다. 또한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이다.

오 거룩한 사랑, 당신은 얼마나 감미로운지!

언제 당신께 나의 마음을 기꺼이 모두 드리게 될까요?

나는 증거하기에 갈급하여, 기절할 지경이고, 죽을 지경입니다.

구속하시는 사랑의 위대함을, 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