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재유(춘천교회)

세기에는 뱀이 사단의 도구로 등장하는데, 우리는 그 뱀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이는 성경이 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사단은 교묘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뱀은 에덴동산에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신과 의심을 섞었다. 하나님의 말씀에다 무언가 섞는 것은 그게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대단히 위험하다. 사단은 자기를 위장하고 진리를 변질시켜 사람들을 유혹에 빠지게 하는 교묘한 포장의 대가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단을 ‘이 세상 신’으로 또한, 불신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는 존재로 고발하고 있다(고후 4:4, 11:14).

세상은 언제나 커다란 전쟁터였다. 한때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 있었고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이 서로 뒤대이면서 역사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구분 짓기도 어려운 세력 대 세력의 구도 앞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정치와 이념을 넘어 사회 모든 분야가 세계화되면서 경계도 없어지고 모든 문화, 정통, 생활이 뒤섞여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주장하고 나서는 현실을 본다. 촛불을 들고, 피켓을 들고, 확성기를 들고 목청을 돋우며 외치는 사람들과 그에 맞서는 반대의견으로 맞불을 놓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다. 한때는 옳은 줄 알았던 주장도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달라진다. 따라서 여전히 무엇이 참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어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이는 사단의 교묘한 전술인데, 무엇이든지 속이고 거짓과 포장을 일삼으며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면 다 희석하고 변질시키는 전략에 사람들은 잘도 걸려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복음이 그렇다. 오늘날 복음은 각색되고 포장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람들은 ‘은혜의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미 사람들의 입맛은 다른 복음에 길들여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면 맛이 없다고 거절한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화답하여 구원의 기쁨과 자유와 평안을 얻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에 다른 무언가를 더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들어온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율법과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주장하는 다른 복음을 전하니까 꾐을 받아 어리석게도 다시 율법의 종살이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바울은 급히 붓을 들어 편지를 보냈다.

갈라디아 1장에 표현된 대로 다른 복음이란, 은혜로 구원받는 진리에 다른 것을 섞은 것이다. 열심, 봉사, 교육 등을 강조하고 이대로 살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받은 구원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짓 가르침인데, 놀랍게도 이 거짓 가르침이 사람들의 구미에 맞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다른 복음을 더 원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한 엉터리 거짓 전도자들이 영혼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데도 깨닫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하고 있다. 복음이 변질되니 영혼들이 병들고 모두 망하는 위험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왜 수많은 현대인이 암이나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는가? 참으로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의 건강문제가 심상치 않다. 현대는 첨가제 세상이다. 식품첨가제란 식품을 부드럽게 만드는 유화제, 값싸게 단맛을 내는 사카린, 원하는 색을 만드는 착색제, 맛을 내는 조미료, 향을 내는 인공향료, 장기간 보관할 수 있게 하는 보존제, 나트륨, 젖산, 구연산 등으로, 일반인들은 알기도 어려운 수백 가지의 식품첨가제가 사용되고 있다. 왜 식품마다 다량의 첨가제를 넣는가? 이는 상업적 이기심과 사람들의 입맛이 유혹을 불러와 결국 식자재들을 변질시킨다. 소비자 단체나 일단의 고발 자들이 책이나 방송을 통해 햄, 껌, 아이스크림, 과자, 젓갈, 단무지, 간장, 어묵, 드링크, 소주 등 거의 모든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제의 폐해를 고발하고 나섰지만, 현대인들의 입맛은 이미 이런 첨가제들에 길들어져있다. 신선하고 몸에 이로운 전통음식들은 맛이 없다고 거절한다.

이러한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들은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이나 위협할 뿐이지만, 정작 인간의 영혼을 멸망으로 몰아넣는 첨가제를 섞은 복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갈 1:7)

우리가 구원을 받는 데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갈 1:6)로 충분하다. 그리스도의 은혜 외에 그 무엇도 첨가해선 안 된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어떠한가?

예배당 건물이 중세시대의 건축물보다 화려하며, 교인들은 기복신앙을 선호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여러 모양으로 소위 부흥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영혼들은 병들었으며 믿음의 확신도 없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나 명색만 그리스도인이다. 그 영혼은 벌레 먹은 과일처럼 평안도 없고 구원의 소망도 없이 끌려 다니고 몰려다니다 영원한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음을 누가 알리요! 감쪽같이 빛깔에 속고 입맛에 속고 선전에 속고 포장에 속고 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아 종교인으로 화려하게 살다가 멸망하게 되는가? 이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인가? 그 배후에는 바로 사단이 영혼들을 붙들고 있으며 또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가?(고전 1:18). 이 하나님의 복음에는 능력이 있어 구원 받은 자의 삶에 변화와 안식을 주며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감동하게 한다. 복음을 듣고 깨달았노라 하면서도 아무런 감동이 없이 사는 사람은 여전히 불신자이거나 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첨가물의 원조는 사단이며 발원지는 에덴동산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생수를 마실 수 없어 목말라함이 무슨 일인가? ‘장마 통에 마실 물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많이 알며 부르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이 전 세계 모든 족속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 물질의 풍요, 상업적 기술이나 전략을 이용해서 교회와 기독교단체들이 발 빠르게 선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선교사를 100명 이상 파송한 교단이 21개나 되고 어떤 단체는 1,500여 명을 파송했다고 한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 수많은 선교사가 파송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있을까? 전시용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모양만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면 이야말로 사단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만약에 첨가제가 사용된 불량 복음이 더욱 널리 확산된다면, 그만큼 많은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니겠는가?

당신은 은혜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자유케 된 그리스도인인가?

당신이 전하는 복음은 아무것도 첨가된 것이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