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를 보는 눈

우리는 흔히 로마서를 성경의 꽃이라고 부른다. 로마서는 성경의 핵심주제인 구원론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신 구원이 무엇인지 가장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를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또 연구하고 공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신령한 선물을 공급받게 되어 믿음 안에서 더욱 견고해진다(롬 1:11). 또한, 로마서에 기록된 교훈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성경의 안위를 받아 누리면서 소망을 확실하게 가지게 되고(롬 15:4),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신령한 교제를 통해서 서로 상합하고(엡 4:16) 피차 안위함을 얻게 된다(롬 1:12). 이러한 믿음의 교통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에서 영적인 열매를 절로 맺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경험하는 삶이다. 이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룩한 의무를 느끼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게 된다.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갈망을 가지게 된다(롬 1:14-15).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롬 1:16). 이렇듯 로마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죄인을 성도로 변화시키는 능력, 성령의 임재를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는 능력, 그래서 무력한 신자를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변화시키는 능력, 평범한 신자를 선교사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담고 있다.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마르틴 루터를 종교개혁자로 변화시킴으로써 중세 교회를 미신적인 교황제도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었던 것도 로마서이고, 존 웨슬리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 영적으로 죽은 것 같던 18세기 교회를 살릴 수 있었던 것도 로마서이다. 또한, 존 넬슨 다비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진리를 드러나고 새로운 은혜의 경륜으로써 교회의 본질과 이상을 밝혀 선교 약진의 시대인 19세기를 열 수 있었음도 로마서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로마서를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는 믿음을 발견하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오늘날 기독교 풍토이다. 하지만, 로마서는 더 큰 것, 더 위대한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모든 민족에게 미치는가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이다(롬 1:16,17). 또한, 로마서는 개인의 구원을 넘어서 먼저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그리고 최후에는 다시 유대인들을 품으시는 광대한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롬 11:25,26). 이렇듯 로마서는 철저히 선교지향적인 책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가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이 선교적 교회로 성숙하기 원한다면, 2천 년 전에 선교사 바울이 썼던 로마서를 참조함이 최선의 길이다.

로마 교회의 특징

로마 교회의 성립에 대해서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신빙성은 약하다. 흔히, 사도행전 2장 10절에서 언급된 오순절에 천하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 가운데 로마에서 온 나그네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고 로마로 돌아가 로마교회를 개척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이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다. A. D. 49년경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을 때(행 18:2)에도 이미 로마에 신자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50년대 말 경에는 적어도 셋 이상의 가정 모임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고, 로마서 16장에서는 로마에 있는 여러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문안하는 것을 볼 때, 이들이 초기 로마 교회 성도였음이 확실하다.

로마서 16장에는 로마 교회에 속한 총 28명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 중 26명의 이름을 살펴보면 다양한 인종과 사회적 신분을 가진 공동체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굴라는 본도에서 왔고(행 18:2), 에베네도는 소아시아 출신이었다(롬 16:5). 브리스가와 안드로니고, 유니아, 우르바노, 루포와 그 어머니는 동방지역에서 바울의 선교팀 일원이었다(막 15:21, 롬 16:13). 다른 이들, 곧 바울이 “사랑하는”이라고 부르는 암브리아, 스다구, 버시 등은 아마도 동부지역에서 바울을 만났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상당수의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섞여 있었고, 이들 가운데는 다수가 노예이거나 노예의 후예였음을 알 수 있다. 26명 중 11명이 바로 이 그룹에 속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라틴어 이름을 가진 4명은 이전에 노예였거나 노예의 후손임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이 마리아, 유니아, 암블리아, 그리고 율리아이다. 또한, 아순그리도, 블레곤, 빌롤로고, 허메, 네레오, 드루배나, 드루보사 등 6명은 로마에서 흔한 노예 이름이었다. 이 11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아리스도불로와 나깃수에게 속한 노예들에게도 문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로마 교회는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노예들 사이에 단단히 막혀 있던 담이 허물어지고, 인종 구분이나 사회 신분의 차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역동적인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이 이 로마 교회 가운데 생생하게 살아 역사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교회는 복음 진리를 말로만 믿는 교회, 또는 머리로만 아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살전 1:5)으로 믿는 교회였던 것이다.

로마 교회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롬 1:4)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였다. 그저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였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는 이러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롬 1:5) 하는 복음의 사명에 불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의 명성은 온 세상에 전파될 수밖에 없었다(롬 1:8)

그럼에도, 로마 교회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 진리에 충실해야 했다. 교회는 복음 진리로 무장할수록 더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된다. 복음 진리에 강할수록 하나님께로부터 다양한 신령한 은사 또는 영적인 선물을 받아 견고한 교회로 세워지게 된다(롬 1:11, 13, 15).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인 복음 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세워짐으로써 장차 스페인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기를 바랐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사도 바울의 세계 선교 경영을 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고자 하는 사명에 불탔던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로마 바로 목전인 일루리곤까지 두루 행하여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고, 이제 로마 교회의 도움과 교제를 통해 서바나(스페인) 선교까지 품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또 믿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사는 모습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롬 15:29). 바로 이러한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경험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경험하기 바라는 열망이 선교의 씨앗을 잉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일까?

복음 진리에 충실한 교회

사도 바울은 이미 로마 교회가 복음 위에 서 있었음에도 여전히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기 원했다(롬 1:15). 왜일까? 복음을 믿는 것과 복음의 능력이 흘러넘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복음을 믿는 데서 더 나아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복음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의 진수를 알아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그 삶을 보면, 로마서 3장에서 끝난 경우가 허다함을 알게 된다. 복음은 결코 로마서 3장,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옥의 형벌을 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오히려 시작에 불과하다. 로마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개한다.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바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은 받았지만, 죽은 것 같은 상태에 빠진 채 살아가는가? 하지만, 아브라함은 역동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이처럼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인정하셨으며 우리에게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그 믿음의 자취를 따르기 원하신다. 로마서 5장은 이러한 믿음이 역동적으로 역사하는 개인과 교회가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됨을 보여준다. 로마서 6, 7장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죄와 사망과 육신과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인의 참된 정체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로마서 8장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며,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는 자의 삶임을 승리에 찬 목소리로 선포한다. 로마서 9-11장은 하나님의 주권과 이스라엘의 선택, 그리고 장래 운명에 대해서 그리고 로마서 12장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신약교회의 원리를, 13장은 세상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자세 그리고 사랑의 원리를, 로마서 14장은 하나님 나라의 윤리와 원리를 소개하고 있으며 로마서 15-16장은 그리스도인의 선교 원리와 이처럼 엄청난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이 나타나 있다.

로마서 각 장에는 이처럼 놀라운 복음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서 있는 복음을 옛날 전도자처럼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 모든 일을 궁구하며”(전 1:13) 살펴야 하고,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전 7:25)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써서 전심으로 살피고 궁구한다면,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더욱 복음 진리 위에 굳건히 서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들을 풍성히 받아(약 1:17 참조) 교회의 지상 대명령인 선교를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하게 된다. 교회의 능력, 교회의 영적 성장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의 능력으로 선교하는 교회야말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교회이다.

세계적 교회

그러므로 선교사 바울이 염원하던 로마 교회는 세계적 교회(global church)였다. 바울은 이미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대부분의 아시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을 복음화하면서 모교회가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세계적 교회가 되었는지 경험한 바 있다. 이제 바울은 선교의 대상을 서쪽의 스페인 지경으로 확장하면서 새로운 파송 교회가 필요했다(롬 15:23). 안디옥 교회는 스페인에서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바울의 스페인 선교를 위해 동역할 파송기지가 필요했다. 선교사 바울은 로마 교회가 그 역할을 할 가장 적합한 교회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이 로마 교회를 복음으로 충실하게 하고 또 이후에 이 로마 교회를 세계 선교에 헌신하는 교회로 보양하기 위하여 로마서를 쓴 것이다. 로마서는 다른 서신서와 달리 세계적인 차원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왜냐하면, 복음 자체가 세계를 품고 탄생했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는 이미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정도로 견고한 교회였다(롬 1:8). 바울 사도는 죄가 모든 인류에게 미친 것처럼 복음이 헬라인을 비롯한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함을 강조했다(롬 1:14). 바울은 복음이 단지 로마 교회 안에 갇히지 않기 원했다. 바울의 관심은 다른 사역자에 의해서 개척된 로마 교회가 개척 선교에 동참하는 세계적 교회가 되기를 원했다(롬 15:19,20).

선교의 파송 기지

선교사 바울은 자기 바람대로 로마 교회의 파송을 받아 스페인으로 가지는 못했다. 오히려 로마가 자신의 최후 복음전도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주신 마음을 따라 로마 교회를 스페인과 유럽 복음화의 전초기지로 사용하셨다. A.D. 375년에 복음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언된 이후 서유럽의 스페인과 영국, 프랑스 등으로 퍼져나갔다. 아마 사도 바울의 순교 이후에 로마 교회가 바울 선교사의 유지를 받들어 스페인 선교에 힘썼을지도 모른다. 로마 교회가 로마 제국 안에서의 선교적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제국의 무역로를 따라서 다른 전방 개척 선교를 감당하게 된 것이다.

전방 개척 선교를 추구하는 교회

주님의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성숙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먼저 복음이 세계적인 것(global gospel)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스스로 그 세계적인 복음을 전파해야 할 세계적인 교회임을 알고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역 교회는 세계적인 복음을 전파할 교회로서 전방 개척 선교(frontier mission)를 위한 파송기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성도들이 선교적 교회의 성도들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범 우주적이고 범세계적인 범위와 넓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문화 속에서도 복음을 꽃 피울 수 있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교회를 향하여 늘 관심과 에너지가 집중되는 교회로 성장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그러한 선교적 교회로 성장하며 성숙하길 원했다. 로마 교회가 복음의 진리에 충실해질 때에만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6천여 개의 개척 선교지를 남겨 둔 21세기에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를 찾고 계신다.

이 종 수(편집인)

참고문헌:

목회와 신학 2004년 4월호, “초기 로마교회 구성원들은 누구였을까”

선교 타임즈 2009년 8월호, “선교적 교회로서의 로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