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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어느 주일 아침 주의 만찬을 통해 주 예수님을 기억하며 우리는 그래함 켄드릭(Graham Kendrick)이 쓴 찬송가를 불렀다.

“나의 주님, 이 어떠한 사랑인지요,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시다니,

죄인인 나를 자유하게 하시다니”

 그러나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2절 가사의 첫 소절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네.”

  그 가사를 통해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을 목격했던 증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책자에서 나는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했던 여러 남녀와 함께 서있었다. 그들은 이 위대한 사건들을 각자 자기 관점에서 보았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구주요, 왕이시지만, 우리 모두 저마다 다른 필요를 가지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과 같다.

만일 독자들이

영광중에 계신 주님을 뵈올 그날까지

이 땅에서의 여정을 계속하는 동안,

구주 예수님을 보다 뚜렷하게 바라보고

왕이신 예수님을 보다 충성스럽게 사랑하고

선생이신 예수님을 보다 확고한 발걸음으로

따르게 된다면,

이 책은 그로써 충분한 보상이 될 줄 믿는다.

 돈 니콜스(D. A. Nicholls)

 

1. 구레네 사람 시몬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15:21-41)

시몬은 해외출신 유대인이었다. 그의 고향은 구레네였는데, 그곳은 아프리카 북쪽 해안에 있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그가 당시 예루살렘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아마도 그가 자기 사업 차 거기 있었는지 아니면, 유월절 행사를 기념하려고 예루살렘에 찾아왔던 수많은 해외출신 유대인 중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예루살렘에 와서 이제 막 한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세 남자가 십자가형을 받으러 십자가를 지고 도성 밖으로 끌려 나오고 그 뒤를 많은 군중이 따르고 있었다.

시몬이 그 죄수들 가까이에 다가갔을 때, 그중에서 얼굴이 심하게 상한 한 사람을 보았다. 그 죄수는 가시 덩굴을 꼬아 만든 면류관을 쓰고 있었는데, 날카로운 가시들이 그의 머리 가죽을 찌르고 있었다. 그의 등은 채찍에 맞아 터져 있었다. 그때, 시몬은 갑자기 누군가 자기 어깨에 손을 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 힘 세 보이는데, 네가 이 죄수의 십자가를 져라.”그 순간 시몬은 저항할까 생각하다 곧 바로 단념했다. 칼을 찬 병사와의 논쟁이란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시몬은 십자가를 졌고, 예수를 위해 작은 언덕 기슭의 한 곳으로 십자가를 옮겨주었다. 그 언덕은 여러 동굴 때문에 구멍이 있어 해골처럼 생긴 곳이었다.

거기서 군병들은 구멍을 세 개 파고 세 명 죄수를 그들이 지고 온 십자가 위에 뉘였다. 그리곤 무거운 쇠못을 죄수들의 손과 발(아마도 손목과 발목 위의 뼈들 사이)에 박았다. 시몬은 몸서리치는 광경(십자가가 세워져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시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알렉산더와 루포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지 20년 후에,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루포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데, 그는 로마에서 앞선 위치의 그리스도인이었다. 바울은 또한, 시몬의 아내인 루포의 어머니도 언급하는데, 그녀는 바울을 어머니처럼 보살폈던 사람이다. 이것은 시몬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믿었고, 주 예수님의 제자들을 섬겼다는 말이다. 나는 그들 믿음의 뿌리가 시몬이 예수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그분이 죽어가던 모습을 지켜보던 그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확신한다.

“시몬, 당신은 어떻게 그리도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을 통해 당신 인생과 미래를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할 수 있었나요?”라로 묻는다면 시몬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 몸에 내 모든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죄를 지셨습니다. 또 내 아내의 죄를 지셨고, 나의 두 아들의 죄도 지셨습니다. 사실, 주 예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지셨습니다. 내가 그분 십자가를 졌다는 사실보다 더욱 기이한 일은 그분이 내 죄 짐을 지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내 죄로 인해 고통당하셨고 또한, 죽으셨습니다.”

2. 사형집행 부대 군병들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 쌔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막 15:22-24)

사형을 집행하던 군인들은 아마도 그들의 임무를 싫어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사람들을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대우한다면 당신 또한, 위축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에 가담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단지 명령을 수행할 뿐이었고 그 명령은 그들 상관으로부터 하달되었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집행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죄수의 고통을 조금 덜어줄 진통제 역할을 하는 음료를 제공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음료를 거절하셨다. 아마도, 이는 그분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는 군병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좌우편에 두 강도도 못 박았다.

이 모든 일은 그들의 임무였기에, 특별한 보상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대신 죄수들 옷은 가질 수 있었다. 아마 두 강도는 감옥에서 바로 나왔기 때문에 값나가는 옷을 입진 않았을 것이나 예수님께서는 단지 반나절만 감금되어 있어서 당신 옷을 입고 계셨다. 군병들은 그 옷을 어떻게 나누었을까? 네 명이 나누어야 하는데 옷은 다섯 조각이었다. 한 사람이 터번(머리에 두르는 천)을 가지고 또 한 사람은 신발을 가졌다. 세 번째 사람은 허리띠를 가지고 네 번째 사람은 겉옷을 가졌다. 그러면 속옷은 어떻게 나누었을까? 속옷은 바느질하지 않고 통으로 짠 특별한 것이었다. 군병들은 서로 속옷을 가지려고 제비를 뽑았다.

흔히 “사람들은 종교에서 약간의 이익(혜택)을 얻으면 만족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아주 슬픈 일이다. 이러한 특가상품 찾기(bargain hunting)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 죽음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놓치고 만다.

군병들이 자기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뉘일 때나 예수님 손발에 못을 박을 때도 그분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말씀하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웃으며 욕할 때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부르짖으셨다. 함께 못 박힌 두 강도가 조롱할 때도 그분은 그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 기도는 바로 그 날, 강도들 중 한 명에게 응답되었다.

나는 예수님 처형에 참여했던 군병들 중 누군가는 그 후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들 부대장마저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는 하나님 아들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용서한다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잔인한 행동을 용서하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이 그 날 세우신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으며 우리를 용서하신다.’이다. 이 기쁜 소식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귀에 쟁쟁하게 울린다.

 그들은 예수님 죽음을 지켜보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드리는 기도를 들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소서.

그 말씀이 오랜 세월을 지나 우리에게까지 메아리친다.

나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을 알고 믿는 것 -

그것은 어떤 기념품(souvenir)보다도 더 낫다!

 번역: 김 화 령(남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