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창
사랑과 행복을 함께 나누는 열린길 선교후원회입니다.
이집트 모임 방문기
작성일 : 2016-08-11
조회수 : 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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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모임 방문기 장세학 형제 (인덕원교회) 이슬람이 국교이며, 이슬람의 ‘이맘’(목사)들을 길러내는 대학 알 아즈하르가 있는 인구 9천만의 이집트!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고 열 가지 재앙을 겪은 애굽에 과연, 성서적인 모임들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김제 이완성, 안산동부 김철회, 뚝섬 조대희, 인덕원 장세학형제는) 이집트를 향했습니다. 이번 이집트 방문은 약 10여년 전쯤, 현재 캄보디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박인선 형제님께서 당시 김제 교회에서 모임생활을 하던 대학생 시절에 헝가리 유학을 가게 되어, 그곳의 부다페스트 모임을 통해 방학기간동안 이집트 모임을 방문하게 된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박 형제님을 통해 그곳 소식을 접하게 된 이완성 형제님은 늘 성경을 접할 때마다 애굽에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 모임의 형제님을 한국에 초청하고자 3년 이상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고자 하는 마음을 그곳에 전하였고, 마침내 그곳에서 한국성도들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해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방문 목적은 첫째, 과연 이집트에 성경적인 모임이 있는가? 둘째, 한국에 계속 들어오는 16만 명이상의 이슬람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노하우와 자료들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를 맞춰 이집트 압델 파타 엘시시(Abdel Fattah Al-Sisi) 대통령이 방한하여 대통령과 만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저희도 같은 심정으로 양국 간의 좋은 교제 형성을 위해 기도하며 방문에 필요한 선물들을 준비하였습니다. 두 나라의 국기로 디자인한 수건, Korea Assembly 라고 새긴 펜 등. 이번 방문은 그동안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며 모임들을 접했던 이완성 형제님뿐 아니라 저희 모두에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충격 그 자체였고, 지금도 그 받은 충격에서 깨어나기 힘들 정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질 수 있어서 2주간의 방문을 기억나는 대로 더듬어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3년 전 인도 모임을 함께 (이완성,김철회) 방문했던 경험이 있고, 그러한 기억이 있는 가운데 이번에도 통역의 임무를 맡고 이집트 모임과의 교류를 위해 뜻하지 않게 합류하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큰 축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실 가기 전까지 별다른 기대나 생각이 없이 국내의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부랴부랴 가방을 꾸려 2월 29일 드디어 김철회 형제님과 인천공항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번 여행은 여러 성도님들의 사랑의 후원 가운데 떠나는 이집트 여정은 다소 든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밤 9시. 일찍 공항도착 하셨던 김제교회 이완성 형제님과 서울 뚝섬교회 조대희 형제님을 반갑게 만나, 수화물을 부치고 자정 12시 5분. 출발하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카타르 도하까지 10시간이상 비행. 환승을 위해 5시간 대기 후, 도하-> 이집트 수도(카이로)로 3시간이상을 항공기 이동을 하는 장거리 일정이었습니다. 카타르 도하에서 카이로로 가는 내내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거의 황량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과 이집트의 사막 지대를 가로지르는 것이었습니다. 3월 1(화) 이슬람교의 나라인 애굽을 방문하면서 속으로 은근히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전 11시 반경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여 비자를 받고 짐을 찾아, 미리 저희 얼굴 사진을 메일로 보냈기에 그분들이 우리를 알아봐 주기 바라면서 낯선 공항을 나와 사람들이 빼곡히 기다리는 곳을 향해 나갔습니다. 수많은 인파 중에 한 눈에 보기에도 성도임을 알 수 있는 밝고 인자하게 보이는 61세인 파리드 쟈키 형제님과 행정적인 업무를 잘하여 메일을 주고 받았던 예합 타나스, 그리고 건축가인 매트 릴리프와 무사 살레 형제님등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이동하는 중 아름다운 식당가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집트 모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현재는 몇 모임이나 있는지? 쟈키 형제님에게 물어보게 되었는데, 1885년경 신실했던 한 장로교 목사님이 존 넬슨 다비를 비롯하여 19세기 모임 형제님들의 책을 읽다가 거듭나게 되었고, 모임 진리도 알게 되어 그분을 통해 모임이 시작되게 되었고 무려 140년 정도의 모임 역사와 이집트 전역에 240여개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식사 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복잡한 인구 2500만의 카이로 시내를 거쳐서 숙소인 카이로 헬리오폴리스 승리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1940년 시작된 모임이며 1957년 건축된 예배당은 일견 보기에도 고풍이 서려 있고 1층에 홀 두 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3층에는 손님들이 언제나 머물 수 있는 방이 여러 개 있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습니다. 이곳 모임은 약 500명이 주일 만찬에 참예한다고 하였습니다. 일단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후 7시경 교회 원로 형제님들과 첫 대면의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오후 7시 넘어서 약 10여분의 원로 형제님들과 조심스럽게 서로 간 모임에 대한 탐색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한국 모임의 성격을 저희는 이집트 모임의 성격을 서로 파악해 보려는 조심스런 대화들을 나누면서, 구원 받은 형제들이 맞는지?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모임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통해 일차적으로 피차 동일한 믿음을 가진 형제들이 맞으며, 믿는 바도 많이 일치함을 확인하는 선에서, 우리는 이집트에 모임이 있다는 사실과 그분들은 한국에도 모임이 있다는 사실에 서로 놀라며 그것도 적지 않은 수를 확인하며 서로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약간의 만족을 얻은 후 내일 오전 10시경에 다시 주변 모임의 인도자들이 더 합류하여 확대 교제 분별하는 모임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밤 9시경 교제를 마친 후 81세 되신 파로욱 노 형제님이 손수 운전을 하시고 복잡한 카이로 시내를 서슴없이 건너가고 신호등도 없이 알아서 가는데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무튼 어떤 식당에서 밤11시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곳 이집트의 문화는 밤 10시, 11시가 저녁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늦은 밤 식사 문화로 인해 대부분의 어른들이 배가 많이 나온 것을 알게 되었는데, 중동지방과 인도 등 비슷한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월 2(수) 매일 아침 식사는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 고추장, 고추, 간단한 밑반찬과 이집트 성도님들이 준비해 주신 빵, 요플레, 과일 등으로 간단하게 먹었는데, 푸짐하게 차려주신 이집트식 밤늦게 먹는 저녁 식사 보다 오히려 저희끼리 한국식으로 먹는 것이 더 좋았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오전 10시 어제에 이어 좀 더 확대된 원로 형제님들과의 교제 가운데, 이집트 모임은 전체가 한 몸으로서 지역 모임 각각 보다는 전체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만찬을 소중히 여기며 분명한 구원과 더불어 삶의 변화와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분명할 때 만찬을 참여하는 다소 엄격한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한국 모임은 어느 성격인지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중도적인 입장임을 얘기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성령 한 아버지 한 소망을 가진 주 안에서 동일한 은혜와 진리를 따르는 형제들임이 피차 확인되면서 서로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기뻐하면서 2차 교제도 상당히 순조롭게 마쳐지게 되었습니다. 오후 2시경 처음으로 이집트 맘두 형제님 가정으로 초대되어 자매님을 통하여 이집트식 음식을 풍성하게 대접 받게 되었습니다. 맘두 형제님은 사우디에서 건축 엔지니어로 24년간 일했던 분으로서 이슬람의 실상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직은 한국이 잘 모르는 이슬람의 겉과 속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또한 상 이집트에 60년전 바쑴이라고 하는 형제님을 통해 무려 100개 이상의 모임이 세워지게 된 형제님의 놀라운 삶의 간증도 하였는데 참으로 흥미진진하였습니다. 휴식 후 저녁 7시에 승리 모임에서 약 80여분의 성도님들이 성경 공부 모임이 있는데 말씀 교제를 하도록 기회가 주어져 이완성 형제님이 이스라엘을 핍박한 바로에 대해 ‘이 땅에서 예배하라’ ‘너무 멀리 가지 말라’ ‘너희 남자들만 가라’ ‘소유물은 두고 가라’등 바로의 타협안에 대해서 마지막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증거 하였고, 3중 통역이었지만 성도들이 말씀을 잘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 또한 애굽을 세상으로 바로를 사단의 모형으로 보면서 다만 그들을 바로의 후예라는 식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새 피조물로 보아 달라고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그 같은 동일한 분별을 하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폐허와 빈곤에서 60년이 지난 오늘날의 변화된 한국사와 아울러 1960년 초반에 모임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된 한국 모임의 역사와 20여년 전부터 현재 17개국 35 가정이 해외 선교로 나가 있는 소식을 전했을 때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사실 이집트는 남부 수단에 한 가정이 선교사로 나가 있을 뿐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파리드 쟈키 형제님 집에서 밤 11시부터 했던 것 같았습니다. 늦은 밤에 식사하러 모이는 형제님들과 메인 요리에서 후식까지 무려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밤늦은 식사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고, 매번 음식을 많이 드시라고 덜어주시는 바람에 갈수록 예전에 쿽 선교사님이 “한국 형제들이 나를 사랑으로 먹여 죽이려고 합니다.”라고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났고 우리도 그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3월 3(목) 아침 8시 <행전 18장> 아볼로의 고향이며 기원전 3세기 70인역 헬라어 성경이 번역된 곳인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약 4시간에 걸쳐 렌트한 승합차로 이동하였습니다. 비행기안에서 내려 볼 때는 황량한 사막뿐이었는데,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내내 비옥한 삼각주가 펼쳐진 지역으로 온통 푸르른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일강 유역의 5%의 땅이 95%의 나머지 지역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변가 항구도시이며 인구 800만의 학문과 예술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필라캠 미디어 사역 책임자인 하니 모니르 형제님을 만나 우선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잠시 들러 보았는데, 무려 100만권의 장서가 있으며 동시에 2천명이 열람할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된 큰 도서관이었습니다. 구경 후 사라이 모임을 방문했습니다. 그 모임은 6층 건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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